[여성] '호주제 폐지' 몸사리는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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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6일 국회에 제출됐다. 이제 호주제의 운명은 순전히 국회의원들의 선택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찬반 입장을 갖고 있는 여성단체와 유림 측은 국회에 압력을 넣기 위해 막바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칼자루를 쥔 의원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정치자금과 관련된 회오리 정국 속에서 내년 총선을 의식하며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이다. 호주제는 안개 정국 속에 놓여 있다.

◇촉박한 국회 일정=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은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 회부돼 안건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법사위 일정상 일러야 27일께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안건이 상정돼도 곧바로 법률 심사에 들어가지 않는다. 현재로선 법사위내 제1 소위에 회부될 가능성이 크다.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의 보좌관은 "소위로 넘어가면 법안이 낮잠 자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16대 정기국회는 다음달 9일에 끝난다. 때문에 소위에서 의견이 조정돼 국회 본회의에 오르기도 쉽지 않다. 12월이나 내년 초에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심의되면 다행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17대 국회에서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의원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일정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의원 보좌관은 "일정은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이 의지만 있다면 민법 개정안을 먼저 다룰 수 있으며 일사천리로 통과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입장 표명 꺼리는 법사위 의원들=민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위해서는 법사위 의원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하지만 명쾌하게 입장 표명을 한 의원은 많지 않다.

총 14명 중 천정배.원희룡.조배숙 의원 등 3명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용규 의원은 입장표명을 유보해 왔으나 소속당인 열린우리당의 당론에 따라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조순형 의원은 심정을 전혀 내비치지 않고 있으나 평소 성향상 찬성할 것으로 여성계는 전망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사람은 심규철.최병국.김학원 의원 등 3명이다. 이들은 호주제를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沈의원은 "실제 별의미도 없는 호주제를 유림과 갈등을 빚으며, 게다가 3백억원 가량의 비용을 들여 굳이 고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기춘 의원은 법사위 위원장, 함승희 의원은 소위 위원장이어서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나머지 김용균.최연희.함석재.홍사덕 의원은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법안 심사가 소위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 소위 소속 의원들의 의견은 더욱 중요하다. 함승희 위원장을 포함해 9명의 의원이 있다. 의원들의 성향상 호주제 폐지 반대 입장으로 기울 가능성이 더 크다.

당 차원에서는 열린우리당만 당론으로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김영환 정책위의장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나 당 차원에서 정해진 당론은 없다. 한나라당의 경우 여성 의원들이 나서 "호주제 폐지 반대는 절대 안된다"며 당대표에게 압력을 넣고 있다.

최근 국회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가족의 범위를 넣는 등 법안을 고친 뒤 의원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한 의원 보좌관은 "의원들의 속 마음은 분명하나 내년 선거를 의식해 섣불리 의견 개진을 못하고 있다"며 "찬반 입장에 따른 총선에서의 득표 여부가 국회 통과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 출근투쟁 벌이는 여성단체들=민법 개정에 앞장서온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9일 국회 앞에 이동차량사무실을 열었다. 탤런트 권해효씨를 시작으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8일에는 국회앞 포장마차에서 '허심탄회 토론회'를 열고 시민들과 격의없는 논의의 장도 열 계획이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moonk21@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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