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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과거의 사랑을 품는 사람들 '…in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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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그린 영화는 한둘이 아니다. 박신양.최진실의 '편지'나 이정재.이영애의 '선물', 한석규.심은하가 열연했던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주인공과 슬픔을 억누르며 이를 속절없이 지켜보는 연인이라는 이야기 틀은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고 눈물을 짜낸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일까. 단순한 멜로디에 유치하고 상투적인 가사지만 들을 때마다 감상에 젖게 하는 유행가 같다. '…ing(아이엔지)'는 이른바 전형적인 최루성 멜로다. TV 드라마처럼 단출한 구성이지만 가슴 시린 비련의 색조가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여고 3년생인 민아(임수정)는 별명이 '13층 붙박이'다. 어릴 때부터 하도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어 간호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이미숙)와 단 둘이 산다. 병원 신세를 오래 진 탓에 학교에서도 외톨이로 지내자 엄마가 대신 친구가 되기로 하고 서로 '민아''미숙아'라며 격의없이 지낸다. 발레리나가 꿈이지만 이룰 수 없는 것을 향한 그리움에 괴로울 뿐이다. 그런 민아에게 어느 날 사랑이 찾아온다.

상대는 아래층에 살며 사진을 전공하는 영재(김래원). 제대 후 복학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넉살 좋고 건들거리는 모습이 처음엔 거북했지만 그 순진한 모습에 시간이 흐를수록 스르르 마음이 녹는다.

'…ing'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다. 우선 민아의 어머니. 그녀는 젊어 남편을 잃었지만 그가 남기고 간 장교 모자와 단란했던 시절의 사진 앨범을 침대 맡에 두고서 틈날 때마다 들춰보며 과거의 사랑에 얽매어 산다.

민아의 남자 친구 영재. 그 역시 민아와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사진을 벽에 걸어두고서 그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자칫 뻔하고 얄팍해져 버릴 수도 있었을 영화에 무게를 부여한 건 이미숙의 안정된 연기다. 그녀는 '장화, 홍련'의 히로인인 임수정과 '옥탑방 고양이'로 인기 절정에 있는 김래원이라는 청춘 스타들 사이에서 묵직하게 균형을 잡아주었다.

시사회장에서 제작자는 '…ing'의 스태프가 모두 20대 후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젊은 시각으로 색다른 영화를 만들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 영상원 출신의 여성 감독 이언희(28세)씨를 비롯해 촬영.조명 등이 모두 젊은 집단으로 꾸려졌다. 그러나 제작자의 기대와는 달리 '…ing'에는 패기나 실험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찌보면 낡은 감성에 더 많이 기댄 영화다. 젊은 영화라 하기에는 분출하는 힘이 모자란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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