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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오락가락 高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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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도대체 정부의 정확한 입장이 뭐냐. 우리도 헷갈리는데 부안 주민이나 일반 국민은 오죽하겠는가."

요즘 위도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문제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하나 같이 정부를 성토한다. 정부가 주민투표에 대한 명확한 계획은 밝히지 않은 채 오락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대응 방식을 보면 혼선을 자초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정부 당국자들은 지난 17일 부안 주민대표들이 연내에 주민투표를 하자고 요구하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민투표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투표방법을 협의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대화는 중단됐고 급기야 19일엔 일부 시위대가 부상 의경이 탄 구급차를 공격하는 등 부안엔 거의 무정부 상태가 연출됐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자 고건(高建)국무총리는 이날 "주민투표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이전이라도 정부와 부안 측이 절차 등에 합의하면 시기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高총리는 20일 국회 답변에서 또 말을 바꿨다. "주민투표를 할 수 있는 기준, 즉 주민투표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평화적인 분위기와 대화'…듣기엔 좋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한가한 말이 먹힐 때가 아니다. 그러기엔 정부와 주민 간의 불신의 골이 너무 깊게 파였다.

연내 투표 실시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면 내년 언제까지 절차 협의를 끝내고 투표를 하자는 식의 보다 명확한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대화도 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부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철근 정책기획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