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단 묵은 12층 객실 옆방 피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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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7시15분 반군의 로켓포 공격으로 국회 이라크 조사단이 투숙 중이던 바그다드의 특급호텔 팔레스타인 호텔과 셰러턴 호텔은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담 후세인 동상 철거로 유명한 티그리스강 동편 피루두스(낙원) 광장에서 25m 안팎의 거리로 마주 선 두 호텔에 로켓포탄 10여발이 동시에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매캐한 연기와 파편이 가득한 호텔 로비는 잠옷 차림으로 대피하는 미 군정청 직원들과 피투성이의 부상자를 후송하는 미군이 뒤엉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국회 현장 조사단="'꽝' 소리와 함께 호텔방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듯했다. 창밖을 보니 건너편 셰러턴 호텔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강창희(姜昌熙.한나라당)국회 조사단장이 전한 사고 당시의 정황이다. 姜의원은 셰러턴 호텔만 포탄 공격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가 묵고 있던 팔레스타인 호텔도 거의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 姜단장은 피격 직후 긴급대책회의에서 "의원 전원이 무사해 다행"이라며 "안전대책을 강구하겠지만 조사단의 일정을 변경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한충수(민주당)의원은 "정진석(자민련)의원의 방에서 오늘 일정을 얘기하고 있던 중 '쾅'소리와 함께 건너편 호텔에서 콘크리트와 유리 파편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鄭의원은 "당시만 해도 우리 호텔이 공격을 받았는 지 몰랐는데 문을 열어 보니 복도에 먼지.연기가 가득하고 건너편 방들의 유리창이 깨지고 사람들이 황급히 나오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鄭의원은 또 "정말 이 같은 사태를 목격해 보니 이곳의 치안이 어떤 상황인지를 확실히 알겠다"며 "치안 유지를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열린우리당의 송영길 의원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宋의원은 "의정일기를 작성하던 중 엄청난 폭음이 들려 작업을 중단하고 복도로 뛰어나갔다"며 "이 같은 위험한 치안 상황을 한국에 돌아가 국회와 국민에게 전하겠다"고 밝혔다.

로켓포 한발은 수행원으로 함께 온 국회 국방위 이채헌 대령이 묵고 있던 객실 바로 옆방을 명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조사단은 20일 예정보다 하루 일찍 바그다드에 도착해 팔레스타인 호텔에 묵고 있었다. 또 피격 당시 팔레스타인 호텔에는 손세주(孫世周)바그다드 주재 대리대사 등 한국대사관 직원 5명이 묵고 있었으나 다행히 피해는 없었다.

◆팔레스타인 호텔 피격 상황=로켓포는 호텔에서 약 3백m 떨어진 사둔거리의 당나귀 수레에 실려 있던 로켓포 발사대에서 발사됐다고 현지 경찰이 말했다. 사건 직후 미군과 이라크 경찰은 팔레스타인 호텔과 인접해 있는 사둔거리에서 30발의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대와 자동차 배터리에 연결된 타이머를 발견했다.

이라크 경찰들은 테러범들이 원격조종으로 로켓을 발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라크 경찰 관계자는 당나귀 수레에 실려 있던 이 발사대에서 최소한 일곱발의 로켓이 발사됐고 다른 다섯발은 장전돼 있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오전 7시 조금 지난 시간에 발사된 세발의 로켓은 한국 국회 조사단이 묵고 있던 12층과 15, 16층에 각각 명중했다. 16층에 떨어진 로켓은 벽에 지름 1m에 가까운 큰 구멍을 냈고, 15층에서는 객실에 명중해 미국 건설회사 핼리버튼의 하청업체 직원 한명이 중상을 입어 긴급 후송됐다. 전체 20층짜리 팔레스타인 호텔의 유리창도 다수 깨졌다. 호텔 직원들은 이 공격이 미사일 공격으로 착각할 만큼 넋이 나가 있었다.

◆셰러턴 호텔=셰러턴 호텔도 팔레스타인 호텔과 거의 동시에 반군의 로켓포 공격을 당했다. 미군이 지난 4월 9일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동상을 무너뜨렸던 피루두스 광장에서 티그리스 강변 쪽으로 25m 떨어진 셰러턴 호텔도 외신 기자들이 많이 투숙하는 곳이라서 반군 공격의 목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공격에 셰러턴 호텔 로비는 부서진 유리 파편으로 난장판으로 변했고 엘리베이터 한대도 부서졌다. 당시 로비에 있던 외신 기자들이 급히 대피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두 호텔에 공격이 있은 직후인 오전 7시20분쯤 이라크 석유부 청사도 로켓포탄 여덟발을 맞았으나 여섯발은 불발탄이어서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다드 미군 당국은 사둔거리의 로켓포 발사기 외에 이탈리아 대사관 부근 등 모두 네곳에서 추가로 사제 로켓포 발사기와 수십발의 로켓포탄을 찾아냈다.

◆"바그다드에 안전지대는 없다"=팔레스타인 호텔과 셰러턴 호텔은 미군의 특별경비구역으로 주변이 높이 4m, 폭1m 콘크리트 방어벽으로 둘러쳐져 요새나 다름없는 곳이다. 입구의 미군 초소가 24시간 출입자를 통제하고 별도로 철조망 바리케이드까지 2중.3중으로 경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호텔 주변지역에는 미군 탱크 7~8대와 이라크 경찰 수백명이 반군의 공격에 대비해왔다. 그러나 이 요새도 이날 수백m 밖에서 날아온 반군의 사제 로켓포탄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투숙했던 알라시드 호텔과 안전지대인 '그린존(Green Zone)'안의 미군정 사령부도 이번처럼 로켓포에 피해를 보는 등 반군들의 휴대용 로켓포 공격 앞에 바그다드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바그다드=서정민 특파원,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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