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나의 힘] 9. 사찰생태硏 김재일 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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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낙엽(落葉)을 볼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런데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57.사진) 소장은 낙엽을 '낙엽(樂葉)'으로 부른다. 가을 산을 수놓은 낙엽 하나에도 재생과 순환이란 생태의 원리가 담겨 있기에 즐겁다고 했다.

김소장은 남다르다. 그는 지갑 속에 장기 기증서와 화장 서약서를 넣고 다닌다. 언제 닥칠지 모를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뜻에서다.

반면 휴대전화.신용카드.자동차 열쇠 등은 찾을 수 없다. 기계적인 삶을 멀리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불우한 이웃과 억울하게 죽은 생명을 위해 걸어다닐 때나 버스를 기다릴 때나 항상 '반야심경'을 염송한다.

김소장은 1994년 새로운 환경운동으로 생태 기행을 창안했다. 그리고 매달 한두 차례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동안 대중교통 이용과 도보 여행을 고수했습니다. 현장.체험 중심의 환경운동을 벌인 거죠. 거리 캠페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밑바탕에는 불교의 자비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생물.무생물 등 일체 중생은 하나라는 깨달음을 일상에 옮기려는 것이다.

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했던 그는 30년 전 학생들과 경기도 안성 칠장사에 소풍을 갔다가 객스님에게서 들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감동을 받아 5년간 출가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경험이 무소유와 생명 실천적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지난해 사찰 생태연구소를 세웠다. 전국 사찰 1백8곳의 생태를 향후 10년간 조사, 기록물로 남길 작정이다.

친환경적 전통 해우소, 생태적 방생,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발우 공양 등을 연구하고 있다. 조상들의 생태적 지혜를 오늘에 맞게 살리겠다는 원력(願力)이 강하다.

"88년 전국 사찰 1천개를 순례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현재 4백26곳을 방문했죠. 맨손 귀농도 준비 중입니다. 무소유의 농사를 위해 농막(農幕)을 겸한 토굴도 찾고 있죠."

그의 철저한 다짐이 놀랍다. 지난해 '불국토상' 상금 2백만원과 올해 '불이상' 상금 5백만원도 사회에 내놓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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