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에 법적 책임 못 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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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면 결과가 나빴더라도 경영 판단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합의 21부는 20일 참여연대가 박원순씨 등 삼성전자 소액주주 22명을 모아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삼성전자 전.현직 이사 10명을 상대로 낸 주주대표 소송에서 "임원들은 회사에 1백90억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1심 판결의 지급 액수 9백77억원에서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1997년 이천전기를 인수한 사안(1심 2백76억원 배상 판결)의 경우 "임원들의 배상 책임이 없다"면서 2심 재판부가 원심 판결을 뒤집는 등 배상책임을 크게 줄인 때문이다.

97년 당시 이 회사 이사진이 ▶인수 1년 전부터 사업성을 검토했고 ▶인수하는 게 이익이라는 실무자들의 설명을 듣고 합리적 범위 안에서 의사결정했다는 점 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기업 경영은 모험과 위험성이 따르기 때문에 실패한 경영 판단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경우 경영 활동이 위축된다"고 설명했다.

전용덕 대구대 교수는 "경영 판단의 개념을 일찍이 발전시킨 미국에서도 법원이 경영 실패를 가혹하게 묻지 않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삼성전자가 액면가 1만원에 취득한 삼성종합화학 주식 2천만주를 2천6백원씩에 매각한 데 대해 "회사의 손실금액 6백26억원 중 20%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이 88~92년 삼성전자 자금 75억원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건넨 부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소멸 시효가 지난 5억원을 뺀 70억원을 회사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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