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말의 정치학] 14. 클릭(Click) 브릭(Bric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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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두개의 집에서 산다. 하나는 벽돌로 만든 집이고, 또 하나는 디지털로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의 집이다. 영어권에서는 그것을 각운을 맞춰 브릭(brick)과 클릭(click)이라고 한다. 브릭은 사전 뜻대로 벽돌이고 클릭은 마우스를 누를 때의 딸각하는 소리다.

포함 외교라는 말이 있듯이 20세기를 깨운 것은 대포 소리였지만 21세기를 연 것은 마우스의 클릭 소리였다. 원래는 키스 소리의 의성어였던 그 작은 소리 하나가 거대한 세계 시장을 만들고 동서 이념의 벽을 부수고 대포로도 하지 못한 국경의 성벽에 구멍을 뚫었다. 무엇보다 인터넷은 수직적인 것을 수평적으로, 폐쇄적인 것을 개방적으로, 중앙 집권적인 것을 분산적으로 사회 구조의 틀을 뒤집었다.

무명의 레슬러 벤추라가 변변한 선거사무실 하나 없이 인터넷상에 차린 홈페이지와 e-메일, 그리고 네트워크 커뮤니티의 후원자들을 모아 공화.민주 양당의 프로 정치인을 꺾고 미네소타주의 주지사로 당선된 것도 클릭 파워였다.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야말로 잭슨 터너가 말하는 미국의 새로운 프런티어라고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클릭이든 브릭이든 과신은 금물이다. 일본의 버블이 브릭의 집(부동산과 토지)을 과신한 데서 온 것이라면 미국의 버블은 클릭의 집(신 경제)을 너무 믿었던 데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을 찌르던 닷 컴(com) 기업들을 이제는 m을 n으로 바꿔 닷 컨(con)기업이라고 부른다. con은 미국의 속어로 사기라는 뜻이다. 처음 나침반이 생겼을 때 그것을 과신한 수부들이 폭풍 속을 그대로 항해하다가 난파를 당했다는 이야기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양단불락(兩端不落)이라는 오래된 교훈이 있다. 원래 두 집 살림은 어려운 법이지만 이자택일을 뛰어넘어 윈윈전략으로 가는 것이 클릭 세계의 특성이다. 벤추라의 승리는 물리적인 클릭 파워가 아니라 "경제에는 자유, 인권에는 국가 간섭"의 공화당과 "경제에는 간섭, 개인에는 자유"라는 민주당에 대해 벤추라의 리버테리어니즘은 두개를 다 자유로 몰고 가려는 정치철학의 승리였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휴대전화를 애용하는 아이들은 전화를 실컷 걸고 나서도 으레 "자세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인터넷만 가지고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보다 그 애들이 훨씬 현명하다. 클릭 파워만을 믿는 정치는 그 자체가 차별 정치다. 반사신경이 둔해 더블 클릭조차 하지 못하는 노인들은 그들의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클릭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들을 위해 다음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어느 여인을 짝사랑하던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열렬한 연애편지를 써서 정성껏 부쳤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간 어느 날 그 여인으로부터 편지 한통이 왔다. 그것은 결혼 청첩장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신랑감은 바로 청년의 편지를 매일같이 전달한 우편배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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