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 뮤지컬 '킹 앤 아이' 주연 김석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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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가 뮤지컬 주인공에 발탁됐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제대로 트레이닝된 뮤지컬 배우도 아니거니와 카리스마 넘치는 왕의 역할은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더구나 공연이 두달 후로 바싹 다가온 시점, 한 배역에 완벽하게 몰입하기엔 불충분한 시간이었다.

배우 김석훈(31). 그는 이런 악재를 모두 뛰어넘었다. 14일 프리뷰를 거쳐 15일 본 공연에 들어간 뮤지컬 '킹 앤 아이'(내년 1월 11일까지.LG아트센터)에서 그는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완전히 뒤로 넘긴 단정한 머리, 쏘아보는 듯한 강렬한 눈빛, 진지하면서도 귀여운 연기는 원작 뮤지컬 '왕과 나'의 율 브리너와는 다른 새로운 왕의 모습이었다.

"뮤지컬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장르였어요. 깊고 심오한 주제를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킹 앤 아이'의 대본을 읽고 나서는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킹 앤 아이'는 구성이 완벽한 작품이에요. 제가 대사를 읽어주기만 해도 관객은 재밌다고 했을 겁니다."

작품성이 높기 때문에 배우의 부담감은 더했다. 그는 지난 두달간 매일 10시간 넘게 연습했고, 무대 리허설 때부터는 본공연처럼 온 힘을 쏟았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이라며 특유의 손짓을 할 때, 랩인지 노래인지 혼동되는(?) 뮤지컬 넘버를 부를 때, 가정교사인 애나와 '셸 위 댄스'라는 음악에 맞춰 춤출 때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영화 '왕과 나'를 보니 율 브리너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더군요. 저는 오히려 강한 면보다는 귀여운 쪽에 무게 중심을 뒀어요. 무조건 힘준다고 카리스마가 나오진 않잖아요?"

김석훈은 국립극단에서 배우의 첫 발을 내디뎠다. 한 드라마 PD의 눈에 띄어 '홍길동'에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친구들''햄릿' 등 연극 무대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방송이나 영화는 박수 받을 일이 없어요. 내가 연기하는 걸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고 싶은데 그걸 모르니 답답할 수밖에요. 연극은 그런 면에서 숨통을 트게 해주죠. 이번에 뮤지컬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관객의 반응에 희열이 옵니다."

그는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자마자 인터뷰 장소로 달려왔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튜브'의 촬영 때 허리를 다친 뒤 두달간은 지팡이를 짚고 다닐 정도로 고생을 했다. 게다가 요즘엔 허리를 곧추세우고 연기를 하다보니 아픔은 더하단다. 몸무게도 5㎏이나 빠졌다. 주말 2회 공연을 마치면 "뇌와 내장이 쏟아지는 느낌이 든다"고 할 정도로 지쳐 떨어진다.

이것으로 그는 뮤지컬과 작별을 고할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고생스러워도 재밌어요. 좋은 작품 있으면 또 할 겁니다. 이번엔 노래 연습 더 열심히 해서요.(하하)"

박지영 기자<nazang@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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