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토론] 정부 농업·농촌대책 문제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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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鄭英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李憲穆 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연구소장
사회=노성태 본사 경제연구소장

정부는 지난 11일 10년간 1백19조원을 농어촌에 투자하는 '농업.농촌 지원 계획'을 내놓았다. 도시 자본을 끌어들여 농촌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생활 여건을 만들고, 경작 규모를 늘려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대규모 지원 계획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정책실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의 중장기 투.융자 계획의 내용과 문제점을 알아본다.

▶사회=이번 중장기 농업.농촌 대책의 큰 방향은 무엇인가. 이번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았나.

▶鄭=농림부는 도시 근로자 소득의 73% 수준인 농가소득을 10년 후에는 도시 근로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경작 규모.소득 수준 등에서 농가별로 사정이 제각각이다. 평균적인 대책이 아니라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李=궁극적으로 농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져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실질적인 농민소득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비전이 없다.

▶사회=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대책과 이번 대책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또다시 실패할 것이란 우려가 큰데.

▶李=UR대책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지난 10년간의 농정에 대한 분석과 반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달라진 것은 정부가 농민들에게 직접 보조금을 주는 직불제를 확대하고, 농업자금도 일반 대출과 같은 방식으로 심사.대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금융시스템이 돈은 없지만 능력있는 사람을 제대로 골라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원액은 늘었지만 이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시스템은 전혀 없다.

▶鄭=94년 상황보다 지금이 훨씬 나쁘다. 94년에는 42조원을 지원하면서 당초 목표시점보다 3년을 앞당겨 지원했고, 그 이전에 큰 투자가 없었기 때문에 농민들이 큰 기대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시큰둥한 반응이다. 특히 이번 계획은 지원 규모만 밝히고 구체적인 집행 계획이 없다. 결국 지원액을 채우느라 정부가 능력도 기술도 없는 사람에게 사업을 하라고 부추기는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사회=1백19조원으로 책정된 지원 규모는 적절한가.

▶鄭=규모가 크다 작다 얘기할 수는 없다. 돈보다 내용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사업의 타당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정하고 돈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농림 예산의 20%를 직불제로 쓰겠다는데 이것은 맹목적인 목표다. 논농업 직불제의 경우 비료 사용량 등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정해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벌칙을 줘야 한다. 직불제 예산만 늘린다고 농업이 좋아지지 않는다. 돈을 들이는 만큼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李=정부 계획대로라면 농림 예산이 1년에 7.8%씩 증가한다. 그런데 개방에서 이득을 보지 못하는 분야도 매년 5% 정도 증가하는 경우가 있다. 이 정도 규모로 지금까지의 피해를 보전하고 개방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사회=이번 대책의 특징은 농업도 농업이지만 농촌사회를 유지하고 개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농업 외 소득도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농업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과 적절한 방향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鄭=농업은 농촌에 있는 산업의 일부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 인구 중 농업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다. 서구에서도 농촌 인구 중 농업 인구 비중은 10% 남짓이다. 농업과 농촌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농촌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는 이유는 소득 때문만이 아니다. 교육.복지 여건이 낙후돼 있기 때문이다. 농외소득 증대는 불가피한 방향이다. 일본은 농외소득 비중이 85%에 이른다.

농촌 대책에서는 농촌의 정의(定義)가 중요하다. 지금은 읍.면 지역은 모두 농촌으로 본다. 그러나 면단위에서도 산골과 시가지 근교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일부는 농촌의 범주에서 제외해야 할 곳이 있다. 지역구분부터 제대로 하고 현실에 맞게 대책을 세워야 한다.

▶李=농업소득이든 농업 외 소득이든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도시 자본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세제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 주는 정도다. 결국 나머지 90%는 농민들의 몫이다. 농민과 농민조직이 시장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鄭=한 지역에서 이뤄지는 각종 사업이 횡적인 연계가 하나도 없다. 지역주민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지역공동체를 발전시켜야 한다. 지역주민의 역량을 어떤 식으로 키울 것인가가 농촌개발의 핵심이다. 인력육성도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지원만 하면 된다. 정부는 앞에서 끌지 말고 뒤에서 지원해야 한다.

▶사회=농지 전용을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농지은행 도입도 검토 대상이다. 바람직한 농지제도 개선방안은 무엇인가.

▶鄭=농지 문제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 농지는 우선 농업의 중요한 생산요소다. 농지 가격이 낮을수록 토지 용역비가 적게 들어 생산자에게 유리하다. 또 농지는 농민들의 자산이다. 이 경우는 농지가격이 높아야만 농민들에게 유리하다. 두 가지 중 어느 한쪽으로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서는 생활하기 힘드니 땅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정부가 이런 측면에만 너무 집중하면 농업에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李=농지에 대한 규제완화는 농지 값의 상승을 가져와 경영의 규모화를 방해하고, 토지 용역비를 높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의 입장이다. 그러나 기계화 영농을 위한 우량농지는 보호하되, 한계농지는 농외소득 창출을 위해서도 보다 넓게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鄭=농지규제는 소유규제와 이용규제가 있는데 서구 선진국은 대부분 이용규제만 하는데 우리는 소유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토지이용 계획부터 제대로 세워야 한다. 지역단위로 농업으로 이용할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을 미리 정해 계획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농지은행 제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공부문에서 농지를 매수해 이런 사람들에게 20~30년씩 땅을 저리로 임대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회=이번 중장기 대책에는 농협 개혁방안이나 농협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이 빠졌다는 지적이 있는데.

▶李=농산물을 제대로 팔려면 개별 농가 차원이 아니라 지역단위, 생산자 조합단위의 상품화가 절실하다. 농민 개개인이 대형 유통업체에서 요구하는 구매 수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그런데 농협은 농산물 유통을 상인과 농민에게 맡겨놓고 신용사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조합도 너무 잘게 쪼개져 있어 대형 유통업체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기 어려운 상태다. 농민들이 농산물을 생산한 뒤 소비자 식탁에까지 가는 기간과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鄭=농협은 지역구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비중이 매우 큰 조직이다. 그런데 현재 농협체제는 품목별 전문조합이 매우 취약하다. 또 정부 대행 사업의 의존도가 너무 높다. 농민조직인데도 조합장이 경영권을 휘두르고 있으며 책임도 안 진다. 경제사업도 대부분 산지 경제사업은 적자를 전제로 한다. 농협은 이를 농민에 대한 서비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전문성이 없는 것이 적자의 원인이다. 시대 요구에 맞게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사회=정부는 경작 규모 확대를 농업경쟁력 향상의 주요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규모를 늘리면 제대로 될 수 있다고 보나.

▶鄭=우리 농업이 워낙 영세하기 때문에 농업 구조조정을 하면 규모화와 전문화가 대안으로 제시돼왔다. 규모화는 결국 생산비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낮추자는 것인데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농업은 경쟁력보다는 '자생력'개념을 중시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국산 농산물을 살지, 수입 농산물을 살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안전하고 환경기준에 맞는 농산물 생산에 주력해야 한다. 그러면 비싸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친환경 농업을 해야 지속 가능한 농업이 된다. 이런 전제 속에서 규모를 키워야지 단선적으로 규모만 키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李=경쟁력의 기본은 기술과 협동이다. 가격경쟁이 아니고 품질경쟁이다. 과연 고품질 농산물 경쟁력 방안이 제대로 됐는지 의문이다. 기술개발은 현장에 맞는 기술이어야 한다. 현장을 중심으로 한 진정한 의미의 산학협동이 필요하다. 비교적 작은 규모로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농산물을 만들기 위해선 유통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

▶鄭=농정의 정책형성 과정도 큰 문제다. 임기응변이나 국면타개용 농정이 되풀이되고 있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장기적 계획이 없다. 이익집단이 아닌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폭넓은 정책을 펴야 한다.

▶李=국민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 농민단체들도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사회=이번 대책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FTA 문제가 원만하게 처리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李=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농업 부문은 개방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정부는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만 내세우고 있는데 국가의 이익이 개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손해 봐 가면서 협력하라고 하면 동참이 어렵다. UR 이후 지난 10년간 농정을 보면서 농민들은 많은 불신이 쌓였다. 과거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FTA를 통해 국가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하지만 농업 같은 특정 부문을 제쳐둔 채 국가 전체의 발전을 이루기는 어렵다. 농민의 사기를 진작해야 한다.

▶鄭=이번 농업대책에 대해선 곱지 않은 반응이 많다. 지금까지 퍼부었는데 또 퍼붓느냐는 식이다. 농민단체가 커진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을 느껴야 한다. 또 현재 제시된 대책은 개방에 따른 피해를 보전해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같은 시혜적인 방식으로 일관하면 미래가 없다. 농촌에 들어가 꿈을 펼치려는 젊은이들이 많다. 정부의 정책은 종합적인 시각에서 마련돼야 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또 농민과 도시민을 단순 비교해 누가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느냐는 식으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농업이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토의 균형개발이라는 총체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리=김영훈 기자<filich@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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