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국 안에 초강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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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의 매출액이 그 나라의 전체 예산을 앞지르는 진기록이 세워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26일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의 매출이 처음으로 핀란드의 예산을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미국의 정보기술(IT) 분야 분석 기관인 IDC를 인용해 지난해 노키아의 매출이 411억2100만 유로(약 50조원)를 기록해 전년(341억9100만 유로)에 비해 20.3%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핀란드의 올 정부 예산인 404억8200만 유로보다 많은 액수다.

삼성전자 통신 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18조2400억원으로 우리나라 올 예산 총액(약 237조원) 대비 7.7% 수준이었다.

지난해 노키아의 매출은 핀란드의 국내총생산(GDP) 1684억 유로의 4분의 1에 해당하며, 전체 수출액 중 노키아가 차지한 비중도 20%를 웃돌았다. 관련 하청업체 직원들을 포함하면 노키아의 고용 인력은 핀란드 전체의 10%에 달했다. 노키아가 핀란드의 열 가구 중 한 가구를 먹여살린다는 의미다.

노키아는 특히 지난해 4분기에만 1억550만 대의 휴대전화를 팔아 분기별로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6%나 늘었다. IDC는 노키아가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이머징 마켓(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신흥시장)에서 팔아 새로운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선진국의 휴대전화 시장이 포화 상태에 진입하면서 이머징 마켓이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키아의 매출은 1992년 휴대전화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후 현재까지 10배 이상 늘었다. 92년 이 회사에 1000달러를 투자한 사람은 지금 50만 달러의 재산을 가진 갑부가 됐다. 노키아로 인해 200명이 넘는 백만장자도 탄생했다.

노키아 없는 핀란드는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핀란드에서 노키아는 부(富)의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핀란드는 노키아의 성공으로 2003년부터 3년 연속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하는 국가 경쟁력 1위 국가에 올랐다"며 "노키아는 93년 당시 경제성장률 -6.2%, 실업률 18%로 수렁에 빠져 있던 핀란드 경제를 회생시킨 1등 공신"이라고 평가했다. 기업 하나가 나라 경제 전체를 되살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핀란드와 스웨덴은 기업 활동에 적합한 제도와 지원을 통해 몇몇 대기업을 키워 경제를 부활시켰다"며 "우리도 경제력 집중 문제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키아 같은 일류기업이 앞장 서면 다른 기업들도 뒤따라 가는 구도다.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려면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강력한 기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전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은 10억2000만 대를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22.5% 늘었다.

노키아는 지난해 휴대전화 시장에서 35.8%의 시장점유율로 확고부동한 1위를 달리고 있고, 모토로라와 삼성전자가 그 뒤를 이었다. 소니-에릭슨이 4위, LG전자는 5위를 차지했다.

◆노키아=핀란드의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 회사다. 1865년 프레드릭 이데스탐이 설립했다. 설립 초기에는 주로 종이나 고무장화 등 생활잡화를 취급했다. 소련의 붕괴로 경영난을 겪었고 90년대 초에는 매각 위기에 몰렸다. 92년 요르마 올릴라 현 명예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주력사업을 휴대전화로 바꾸었다. 98년 모토로라를 제친 이후 8년 연속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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