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머나먼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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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출발은 둘 다 나쁘지 않았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이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중심 국가로 웅비할 기회가 찾아왔다"며 열변을 토했다. 희망과 자신감이 연설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무엇보다 역대 대통령 선거 사상 최다득표인 1200만 표에 담긴 국민의 지지와 기대가 자산이었다. 취임 이후 보여준 새 대통령의 거침 없는 언행 역시 이런 자산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도 밑천은 든든했다. 모기업에서 받은 10억원의 자본금으로 첫 제품(편의상 F라 하자)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자신감이 있었다. 15명의 직원이 시제품을 만들어 놓고 고사를 지낼 때는 첫해부터 흑자를 내보자고 다짐했다. 500여 명의 손님들을 호텔로 불러 거창하게 출범 기념식도 치렀다. 첫선을 보인 F의 판매가 기대를 밑돌았다는 점이 찜찜하긴 했지만, 까짓것 물건이 좋으니 팔리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장의 벽은 높고도 험했다. 물건이 아무리 좋다한들 좀처럼 고객에게 다가설 수 없었다. 원료비에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는 꼬박꼬박 나가는데 매출은 오르질 않으니 출시 첫 달부터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다음달에도, 그 다음달에도 적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8개월쯤 지났을 무렵, 자본금 10억원은 어느새 바닥이 나버렸다. 직원들 봉급이라도 주려면 여기저기 손을 벌려야 했다.

회계담당에게서 더 이상 남은 돈이 없다는 보고를 받던 날 무작정 차를 몰고 서울을 빠져나갔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답답해서, 너무나 답답해서 바다로 가는 서해안고속도로에선 거센 빗줄기가 차창을 때렸다. 이름 모를 휴게소에서 떡라면을 사먹는데, 자꾸만 목이 메었다. 그해 우리 회사는 13억원 매출에 13억원 적자를 냈다. 사표를 들고 대주주를 찾아갔다. 그는 "이런 거 함부로 쓰지 말고, 다시 시작해 보게"하며 사표를 돌려주었다.

이듬해 나는 정말 다시 시작했다. 영업사원 4명을 모두 교체하고, 비즈니스 모델도 일부 수정했다. F와 목표 고객이 같은 거대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시도했다. 어떻게든 고객에게 다가서기 위해서였다. F의 품질도 고객에 맞춰 한껏 끌어올렸다. 많은 지인들 역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혼자 끙끙대던 첫해에 비해 F의 판매량이 뭉텅뭉텅 늘고 돈이 돌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보이자 직원들은 2년째 봉급 동결의 고통을 감수했다. 나와 함께 길을 떠난 대통령이 한바탕 탄핵 파동을 겪고 있던 무렵이었다.

출범 3년차인 2005년에 처음 영업흑자를 냈다. 첫해에 비해 매출은 250%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드디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얼마 전엔 작지만 흑자를 내준 직원들에게 창사 이후 처음으로 성과급을 나눠줬다. 탕수육에 고량주를 곁들여 축배도 나눴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고객 앞에 고개를 숙이고, 때론 웃음도 팔았던 경험을 함께 얘기했다.

나는 그후 회사의 결정에 따라 신문기자로 되돌아왔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2003년에 썼던 사직서를 발견했다. "경영난에 책임을 지고 사직코자 합니다"라고 썼던 사직서는 여전히 흰 봉투에 다소곳이 담겨 있었다. 그날 TV에서는 대통령의 신년사가 방송되고 있었다. "민생 문제를 풀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문제를 만든 책임은 없다"는 말이 유독 귓가에 남았다. 문득 4년 전 나와 함께 길을 떠났던 대통령의 남은 여정이 궁금해졌다. 그에게 남은 길이 순탄하길 바란다. 아마도, 머나먼 길이겠지만.

손병수 경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