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어린이는 살았지만…(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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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필석아 필석아,못간다 못가. 에미·애비 놔두고 네맘대로는 못간다.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봐,이 불효자식아….』
1일 오전 11시 물에 빠진 세 어린이를 구해낸 뒤 익사한 양필석씨(24·회사원·하남시 덕풍동 310)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동성모병원 영안실.
양씨의 어머니 임옥순씨(50)가 영정을 부여안고 통곡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얼마나 울었던지 더이상 나올 눈물도 없는 마른 통곡이었다.
아버지 양재록씨(52)는 빈소를 찾은 20여명의 마을 주민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손에 쥔 담배만 연방 입에 갖다 물었다. 필터만 남고 다 타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양씨가 목숨을 바쳐 구해낸 세 소년의 가족이 문상조차 하지 않는다며 혀를 차고 있었다.
일요일이면 매번 그렇듯이 양씨는 지난달 30일에도 이른 아침부터 동네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정오쯤이 다 돼서야 축구를 마친 양씨는 친구들과 함께 강바람을 쐬며 땀을 식힐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4㎞쯤 떨어진 팔당대교 쪽으로 향했다.
강언덕배기에 기대앉아 뻐근한 다리를 주무르며 한시름 놓고 있을 때였다. 강물속에서 어린이 세명이 허우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장난인가 싶어 그대로 있으려니 『아저씨,살려주세요』라는 비명이 들려왔다.
양씨는 벌떡 일어나 그대로 30여m를 달려 강물로 뛰어들었다. 함께 갔던 친구 4명도 곧장 뒤따랐다.
강이 산허리를 끼고 돌아가는 곳이라 굽이치는 물살이 무척이나 거셌다.
어린이들 뒤편 강 안쪽으로 헤엄쳐간 양씨는 어린이들을 한명씩 한명씩 밀어냈다. 그러면 친구들이 이어받아 조금더 밀어내고….
20여분간의 씨름끝에 마지막 한명을 강가로 밀어낸 뒤 『이제는 됐구나』싶었을때 양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필석이는 안죽었어. 한정없이 살 것이로구만.』
어머니 박씨의 몸부림에 꺼져버린 촛불을 다시 켜며 누군가 말했다. 액자속의 양씨모습이 다시 켜진 촛불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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