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 수렁서 헤매는 동안 중국 외교 '황금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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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이 이라크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급속하게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이 24일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분석한 국제정세의 판세다.

1998~2000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아시아를 담당해 온 케네스 리버털 미시간대 교수는 "중국은 전력을 다해 모든 국제회의에 얼굴을 내밀고 다자간 접근법을 쓰고 있다"며 "그들이 점점 우리(미국)의 과거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이라크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상대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진 틈을 중국이 공격적인 외교로 메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12~15일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아시아의 '큰형(a big brother)'이라고 불렀다. 중국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중동과 중남미.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에너지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 활발히 움직여 왔다.

중국의 세력 확대에 바탕이 된 것은 세계 4위 규모의 경제력이다. 중국은 최근 4년 연속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2006년에는 무역 흑자규모가 전년에 비해 무려 74%나 성장했다. 성장을 위한 에너지 확보에 열 올리고 있는 중국은 이란.베네수엘라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맺었다. 두 나라는 모두 반미 국가다. 그런 만큼 이들 국가와의 협력 관계 맺기가 수월해 중국의 '무임승차'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중국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서비스무역협정을 체결했고, 필리핀 농업에 49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중국은 또 최근 저궤도 인공위성 격추에 성공해 미국을 긴장시켰다. 미 국방대 신시아 웟슨 교수는 "지금이 중국 외교에서 황금의 기회(golden moment)"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미미한 분위기다. 블룸버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3일 50분간 진행된 국정연설에서 3분의 1을 이라크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 문제에 할애했다"며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말할 때 단 한 번 언급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미국의 이라크 개입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소 이견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중국의 입김이 한결 커졌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고 전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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