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교수가 기고한 시나리오(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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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운선화산 또 대폭발땐/일 전자산업 치명타”/반도체본산 구주 피해/화산재로 생산 불가능
일본 나가사키(장기)현 운젠(운선)화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규슈(구주)를 중심으로한 일본 전자산업이 치명상을 입게될 것이란 「공포의 시나리오」가 독일의 한 지방신문에 게재돼 일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시크 교수는 지난 12일 하노버시의 노이에 프레세지에서 『만일 운젠화산이 대폭발한다면 수천평방㎞까지 퍼진 화산재 때문에 반도체 제조를 비롯한 일본의 전자산업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크 교수는 이와 함께 『일본이 자랑하는 수출용 카메라나 컴퓨터등은 출하도 되기전에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경고는 운젠화산에 그치지 않는다.
후지(부사)산에도 최근 분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어 어쩌면 일본열도 전체가 한꺼번에 재난지대화할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1미크론(1㎜의 1백분의 1)정도의 아주 가느다란 선으로 배선이 되어 있어 화산재나 먼지등 이물질이 들어가면 쇼트(단락)가 돼 못쓰게 된다.
지난 80년 5월 미국 서부의 세인트 헤렌스화산이 대분화를 일으켰을때 산기슭에 있던 휼릿 패커드사의 컴퓨터공장이 약 2개월간 조업을 중단한 것도 이 화산재 때문이었다.
일본의 운젠화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그 피해는 규슈 전체에 이른다.
규슈는 미국반도체의 총본산 실리콘벨리를 본떠 「실리콘 아일랜드」로 불리고 있을 정도로 일본반도체산업의 본산이다.
구마모토(용본)·오이타(대분)를 중심으로 반도체·집적회로 생산공장이 19군데나 있고 지난해 총생산액은 9천2백45억엔(약 4조9천억원),일본 전국생산의 3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화산은 동시에 활동할 가능성이 커 시크 교수의 지적처럼 후지산마저 폭발한다면 그 피해는 수도 도쿄(동경)까지 미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의 전문가들은 시크 교수의 경고를 터무니 없는 것으로 일축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으로는 세계 1,2위를 다투는 구마모토시의 니혼덴키(일본전기)규슈공장의 홍보담당은 『왜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지 그 근거를 밝히고 있지 않아 반론할 기분도 나지 않지만 직경 1m정도의 바윗돌이 날아와 공장을 부순다면 몰라도 화산재는 모두 필터에서 여과돼 공장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고 반박한다.
반도체에 들어가는 집적회로(IC)패키지를 생산하는 「클린 룸」에는 철저한 먼지방지대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1평방m안에 있는 미크론단위의 먼지수를 나타내는 지표로 「클래스 ○○」이란 단위가 사용되고 있는데 니혼덴키 규슈공장은 「클래스10」이하를 유지시키고 있다.
보통 생활공간이 「클래스 1천만」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만큼의 청정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알 것이란게 이 홍보담당자의 말이다.
이러한 청정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두께 10㎝의 필터로 각종먼지를 여과시키고 있다.
또한 작업실에 들어오는 사원은 공기샤워로 모든 먼지를 털어낸다.
이처럼 외부공기를 완전여과시킨후 작업이 이루어지므로 화산재라고해서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외무성의 한 담당자는 『슈투가르트는 뮌헨에 버금가는 독일 하이테크도시로서 일본하이테크 기업동향에 많은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런 기사가 나온 배경에는 일본경제에 대한 독일산업계의 복잡한 심리가 투영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화산재에 대한 우려섞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일본대 이공학부 모리야(수옥희구부)교수는 『화산재는 4㎜이하의 화산방출물인데 미세한 것은 미크론단위 이하의 것도 있어 반도체에 대해선 큰 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화산재는 정보·통신분야에도 큰 장애를 일으킨다.
일본전신전화(NTT)의 한 간부는 『수만회선을 처리하는 고속교환기에 미세한 화산재가 들어가면 회선장해를 일으키기 십상』이라고 말한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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