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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하락 대세" "하락세 일시적"

중앙일보

입력

요즘 화두는 집값 전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신년특별연설에서 “이번에는(집값이) 반드시 잡힐 것”이라고 단단히 말했다.

노 대통령 발언이 이번에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부동산 대책의 완결판’이라 불리는 1ㆍ11대책의 약발이 대단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대세 상승 지속’전망이 대부분이었다. 1ㆍ11대책 발표 이후 상황이 변한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러나 잠시 움츠리고 있을 뿐 잠복 매수세는 여전히 많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강남권을 대체할 분당급 신도시 발표 등 집값이 들썩거릴 재료가 나오면 잠복 매수세는 다시 폭발할 것이란 전망이다.

시장참여자들은 일단 숨을 죽였다. 지난해 가을 서울ㆍ수도권 재건축 아파트값 급등세를 이끌었던 경기 과천지역에선 최고 호가보다 2억원 값을 낮춘 매물이 나와도 선뜻 계약서를 쓰는 수요가 없다. 나머지 지역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쥐죽은 듯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의 시장 상황, 예상되는 변수, 엇갈리는 전망 등을 정리한다.

매도ㆍ매수자간 힘겨루기 지속

서울ㆍ수도권 아파트 매매시장에선 매매거래가 끊기다시피 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동명부동산 이형관 사장은 “1ㆍ11대책이 나온 후 ‘일단 지켜보자’는 관망세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강동구 고덕동 신세계공인 주소라 사장은 “지난해 가을 6억원에 거래되던 고덕 2단지 13평형이 5억5000만원에 나와 있지만 매수세가 붙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기매수세는 여전하다는 게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송파구 잠실동 학사부동산 이상우 사장은 “재건축 아파트값이 내림세라는 소식이 언론에 전해지자 ‘얼마나 내렸냐’고 묻는 매수희망자들의 문의전화가 걸려 오고 있다”고 전했다. 개포동 동명부동산 이사장도 “값이 조금 더 내리면 집을 사겠다는 손님이 15명 가량이나 된다”고 전했다.

서울 강북권이나 경기 개발호재 지역 등 지난해말까지 집값 오름세를 이어갔던 지역에서도 관망세가 두드러진다.

노원구 하계동 제산공인 이영리 사장은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믿는 집주인들이 많기 때문에 호가는 그대로지만 매수세는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ㆍ오산ㆍ남양주ㆍ구리ㆍ의정부ㆍ김포ㆍ안산ㆍ양주 등 교통여건 개선이나 신도시 확대 등 지역적인 개발 호재를 타고 연말까지 꾸준히 강세를 이어왔던 지역도 올들어 조용해졌다.

양주시 삼숭동 광개토부동산 관계자는 “경기 북부 교통여건 개선 호재 등을 타고 지난해 가을 양주 자이아파트의 급매물이 싹 팔리고 가격도 올라갔지만 새해 들어선 다시 썰렁해졌다”고 말했다.

남양주ㆍ의정부ㆍ구리시 등 11ㆍ15대책의 무풍지대로 꼽혔던 곳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매물이 많진 않지만 매수자가 있으면 팔겠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선 지난해말까진 매물을 찾기 어려웠었다. 신안산선 신설 등 교통 호재를 타고 지난해 연말까지 아파트값이 꾸준히 올랐던 안산에서도 호가를 낮춘 매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탄신도시와 인접한 화성시 태안에서도 매수세가 자취를 감췄다. 태안 S공인 관계자는 “대출 자체가 어렵고 대출이자도 오르는 추세라 매수세들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세 상승은 꺾였다" "내년에 더 내린다"

서울ㆍ수도권 대부분의 지역의 아파트 시장은 지난해 11ㆍ15대책 이후 조정국면에 들어갔다. 1ㆍ11대책이 나오기전까지만 해도 이를 두고 ‘단기 급등에 따른 자연스런 조정’이란 해석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가을에 워낙 아파트값이 급등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숨고르기는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었다.

그러나 1ㆍ11대책이 나오자 기존의 시각을 바꾸는 전문가들이 늘어났다. 1ㆍ11대책은 수요억제책과 공급확대책,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포함한 분양가 인하대책 등을 망라한 대책이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이전 흐름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만큼 엄청날 것이란 분석이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재산세 과표현실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재건축 개발부담금제 도입 ▲주택담보대출 규제(LTV, DTI 등) 등 투기수요를 막는 정책은 이미 진용을 갖췄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특별연설을 통해 “공급정책을 준비 중이며,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혀 아파트 공급물량 늘리기가 허언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수요가 억제된 상태에서 공급이 늘면 집값은 자연스럽게 안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1990년대 버블 붕괴 사례를 들며 국내 집값도 거품붕괴 과정에 이미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다나카 수상의‘일본열도개조론’에 따른 땅값 급등 ▲엄청난 토지보상금이 동경으로 몰리면서 집값 폭등 ▲환율 방어 위한 해외부동산 투자권장 ▲부동산 값 안정 위한 세제 및 금리조절 등 90년대 초 일본 버블 붕괴 직전의 모습과 현 국내 상황이 너무 유사하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지역에 30년간 살고 있는 한 중견기업 오너는 “강남지역 40평~60평형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인들 중 양도소득세만 조금 손질되면 아파트를 팔겠다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며 “만약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 단지에 매물이 30채 가량 나오면 서울ㆍ수도권 아파트 값은 급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자식들을 다 결혼시키고 60평 아파트에 부부만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들은 언제라도 아파트를 팔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정기적인 소득이 없는데다 늘어나는 종부세 부담 때문에 강남지역 아파트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상상외로 매우 많다는 것이다. 또 이들이 지금 당장은 엄청난 양도세 부담때문에 아파트를 억지로 들고 있지만 양도세가 손질되거나 하면 한꺼번에 집을 내 놀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집값이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은 올해는 집값이 소폭의 등락을 거듭하다 새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일을 하는 내년부터 집값이 내림세를 탈것으로 본다. 집권 초기에는 권력이 막강하기 마련인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집값 안정’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고, 정책효과는 곧바로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다.

“무슨 소리. 하락세는 일시적. 집값 더 안내린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전문가들과 중개업소 관계자 및 주택건설업체 경영진들은 이미 집값이 내리기 어려운 구도로 고착돼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이렇다. 일단 시중 유동성이 너무 풍부하다. 유동자금만 500조원이 넘고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규모는 1000조에 달한다. 강남구 도곡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 돈을 싸들고 집을 구해달라는 손님들이 밀려오는데 ‘정말 우리나라에 돈많은 사람들이 많구나’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강남지역 6억원 넘는 주택엔 이미 DTI(총부채상환비율)이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강남지역에선 지난해 가을에도 이미 대출이 어려웠었다.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올 여지가 있는 부동자금을 막기 위해선 금리인상이 필수다. 그러나 이게 어렵다. 한 주택전문건설업체 오너는 “금리만 올렸으면 집값은 진작에 잡혔을 것”이라며 “그러나 다른 산업에 미칠 악영향 때문에 한국은행에서도 쉽게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지급준비율만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급준비율은 은행이 고객의 예금지급 요구에 대비해 예금 총액의 일정 비율 이상을 보유하게 하는 것으로 이 비율이 인상되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 여력이 줄어들게 된다.

일본과 같은 버블붕괴 과정을 우리나라는 겪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S건설 대표이사는 “정책을 집행하는 관료들은 일본 버블붕괴 과정에 대한 스터디가 완벽하게 돼 있다”며 “일본의 경우 경제 기초체력이 튼튼했기 때문에 버블 붕괴 과정을 버틸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정부에서 집값이 급격하게 하락할만한 정책은 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급이 이미 꼬인 상황이기 때문에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란 분석도 많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추경직 건교부장관과 한행수 주공 사장이 경질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청와대에서 계획한 물량 만큼 신규 주택공급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부가 잡은 수도권의 적정 신규 공급물량은 연간 30만 가구인데 2004년 20만가구, 2005년 19만가구,2006년 11만 가구 등으로 2004~2006년 3년간 누적공급량이 ‘적정 규모’보다 40만 가구나 모자랐다.

D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은 “분당신도시 전체가 8만 가구임을 감안할 때 40만 가구는 엄청난 물량”이라며 “집은 껌과 달리 뚝딱 만들어낼 수 없는 상품이기 때문에 수급공백에 따른 집값 불안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가 상한제 실시로 강남권 등의 경우 재건축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것으로 보여 기존 아파트는 물건이 귀해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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