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총리가 개헌 게임 개입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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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사진) 국무총리가 23일 '범정부 차원의 개헌 지원 기구 구성'을 지시하면서 '국정 우선순위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행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한 총리가 정치적으로 논란 대상인 개헌 문제에 대해 '행정적 지시'를 내린 게 온당하냐는 얘기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이 "개헌을 하면 1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절감된다"(15일)고 발언한 데 이어 재정경제부도 비슷한 시기에 개헌 추진의 필요성을 언급한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정부 각 부처가 고유 업무는 안 하고 엉뚱한 개헌 지원 사업에 동시에 나섰느냐"(황우여 한나라당 사무총장)는 비판이 야당에서 나왔다.

'개헌 논란'에 대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던 한나라당이 입을 연 것이다. 황 총장은 "국민의 절대적 다수가 개헌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 경제나 서민 생활을 보살피라고 하고 있다"며 "여기에 전념해야 할 총리가 개헌 게임에 개입하는 것은 국민의 뜻에 역주행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당 정보위원장인 김정훈 의원도 "노무현 대통령의 정략적 개헌 발의 주장에 이어 실무 행정의 총 책임자이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총리까지 정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민생 총리가 되겠다고 한 만큼 중심을 잡으라"고 주장했다.

학계와 네티즌에게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시립대 임성학(정치학) 교수는 "국민이 개헌은 차기 정부에서 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헌을 추진하다가는 자칫 우스운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임성호(정치학) 교수도 "총리를 포함한 행정부는 정치권에서 결정하는 사항을 집행하는 곳"이라며 "국회에서 개헌이 통과되면 모르겠지만 지금 나서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티즌들은 "일자리나 먼저 알아봐 달라"(ojaseo), "끝까지 제멋대로, 철저한 독주"(sky)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5년 단임제는 부패 정치의 결과물이니 바꿔야 한다"(kkskks1812)는 의견도 있었다.

청와대 대변인인 윤승용 홍보수석은 개헌 지원 기구의 성격에 대해 "개헌안을 법적.기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예상 가능한 추가적 사안들, 예를 들면 부칙 개정 방안을 논의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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