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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한자학습길라잡이] ① 왜 한자 열풍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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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열풍이 거세다. 한자능력 시험에는 연간 100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들고, 서점의 한자 관련 코너에는 수백 종의 한자 책이 즐비하다. 수능 시험에 한문이 제 2 외국어 영역에 포함됐으며, 상당수 기업체는 한자 능력이 뛰어난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이제 한자 학습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한자 문화권이 가진 시장 가치와 언어.문화의 교류 차원에서도 한자 습득은 필수적이다. 작게는 동북아 문화권과 거래를 할 때도 한자로 된 명함이 긍정적 효과를 주며,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울 때 한자를 잘 알면 크게 유리하다. 900여 개 한자와 1만여 개의 단어를 알면 90% 이상의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중국 교육부 언어 문자관리국의 보고서도 있다.

한자 학습은 시대적 요청이나 취업을 위한 현실적 요구를 채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자가 가진 근원적인 유효성이 있다.

한자는 뜻글자이며 글자와 글자가 만나 단어를 만드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한자어가 70% 이상인 우리말은 한자의 뜻만 잘 알아도 어휘력이 놀랍게 향상될 수 있다. 예컨대 간(看)이나 견(見)에는 대략 훑어본다는 뜻이 있는 반면, 관(觀)이나 시(視)에는 꼼꼼하게 살펴본다는 뜻이 있다. 간과(看過), 견학(見學)은 대략 둘러보는 것이지만, 관광(觀光)이나 시찰(視察)은 주목해 자세히 보는 것이다. 정확한 어휘 사용은 표현력과 우리말 구사력의 향상을 불러올 뿐 아니라, 사고력까지 키울 수 있다.

또 한자는 단어의 뜻을 익히는 데 아주 편리하다. 구제역(口蹄疫)이란 동물의 입[口]과 발굽[蹄] 주변에 물집이 생기는 돌림병[疫]이고, 칠판(漆板)은 옻칠할 칠(漆), 널빤지 판(板), 곧 옻칠을 한 듯 검은 널판이다. 백화점(百貨店)은 일백 백(百), 상품 화(貨), 가게 점(店), 곧 여러 가지 상품을 파는 가게이며, 포유류(哺乳類)란 먹일 포(哺), 젖 유(乳), 무리 류(類)이니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무리란 뜻이다. 한자를 알면 사물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뿐더러 쉽고 재미있게 교과 내용과 친해질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음은 같되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얼마나 많은가.(손오공의 단어마법을 보시라.) 이럴 때 한자를 알면 매우 유용하다. '배'라는 단어를 쓸 때에 한자(梨, 腹, 船)를 함께 써 주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일상의 사람 이름이나 동네 이름, 족보, 주소를 비롯하여 법률, 의학, 경제, 문화재의 명칭 등 온갖 수많은 생활 언어와 시사용어가 대부분 한자어로 이뤄졌다. 전문적인 분야로 갈수록 한자 학습의 필요성은 더욱 늘어간다. 실제로 한자를 몰라 법학 공부를 포기했다는 사람도 있다. 한자를 알면 개념어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도 자연스레 함께 습득할 수 있다.

한자 또한 언어이기에 조기에 배울수록 더 효과적이다. 어린이 한자 학습이 두뇌 발달과 학습능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초등학생의 경우 600~700자만 배우면 충분하다. 초보 단계에서 배우는 대부분 한자는 그림 문자다. 그림을 통해 글자를 익히게 하면 어린이들의 두뇌 활동이 활발해져 표현력이나 언어 구사력이 눈에 띄게 향상될 것이다. 공부가 어려운 것은 말을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어휘력이 풍부해지면 자연스레 공부와 친해질 수 있다.

한자 학습의 목표는 단순히 급수 시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말 학습의 측면에서 이뤄지는 것이 좋다.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한자를 익히다 보면 웃으며 한자와 친해지고, 나아가 공부의 습관도 들일 수 있다.

고리타분하게 무조건 암기하는 기존의 한자 학습 방식에서 벗어나자. 이제 한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자 학습의 요령과 한자를 흥미롭게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자 한다.

박수밀

한국언어문화학회 연구이사·한양대 국문학과 강사

EBS 교양 프로그램 '한자야 놀자'를 2년간 진행했다. 한국한문학회 총무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언어문화학회 연구이사를 맡고 있다. '살아있는 한자교과서', '한문의 이해' 등을 저술했으며 '박지원 단편', '글로 만나는 옛 생각 고전산문' 등의 번역서가 있다.

현재 한양대 국문학과에서 한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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