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아낀다"|무박 등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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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흐르는 물에는 오물은 물론 손도 씻지 않는다.」
구미·일본 등 선진국의 의식있는 시민들이 산이나 강을 찾아 휴식을 취할 때 지키고 있는 불문율 제1호. 과장된 말 같지만 자신들이 결국 음료수로 마실 상수원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자연보호 정신이 그 속에 깃들여 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더 이상의 자연 훼손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취사 및 야영 행위 금지 등 산행할 때 지켜야 할 강력한 제재조치가 내려진바 있다. 지난 3월1일부터 발효된 개정 산림 보호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산림내에 오물·쓰레기를 버리면 2백만원, 불을 지펴 음식을 지어먹거나 화기 및 인화물을 소지하면 10만원, 임산 통제 구역에 들어가면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되어 있는 것.
이같은 강력한 조치 발표 이후 3개월이 지난 요즘 서울 근교 북한산·도봉산·관악산을 비롯해 전국의 산을 찾는 등산객들 사이엔 눈에 띄게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먼저 질탕하게 먹고 마실 필요가 없는 당일치기나 새벽 등산 등 무박 등산이 유행하고 있으며 물이 필요없는 도시락과 김밥·햄버거·초컬릿 등 행동식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또 쓰레기가 남지 않도록 간단한 비닐포장이 나와 하산과 동시에 처리되기도 한다.
이같은 추세는 그동안 산불 조심 기간으로 입산 통제됐던 전국의 명산들이 6월초 일제히 개방되면서 곳곳에서 부쩍 눈에 띄고 있다.
원로 산악인 조두현씨 (62·한국산악회 이사) 등은 『최근 산을 사랑하는 등산인들 사이에 자연 보호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조짐이며 앞으로의 산행은 일몰 전에 돌아올 수 있은 지점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당일 코스가 알맞다』고 말한다.
또 조씨는 설악산·지리산·오대산 등 큰산을 종주 하는 경우 꼭 필요한 취사 및 숙박 시설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나라에도 지리산의 장터목, 세석산장, 설악산의 대청봉·권금성 산장 등이 설치돼 있으나 규모·시설이 낙후돼 있어 이의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많은 등산인들은 등산 규제 조치가 체대로 효과를 나타내려면 위반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제도적인 보완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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