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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벨 소녀'아버지도 '선행 골든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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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골든벨 소녀'로 잘 알려진 지관순(21.덕성여대 사학과 2년.사진)씨의 아버지 지의준(63.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운천2리)씨가 북한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지관순씨는 2004년 11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에도 입학 못하고 검정고시로 중학교에 진학한 뒤 문산여고 3년 때 KBS-TV의 '도전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려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저희 가족도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녘 어린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딸의 아버지인 지씨는 친구 소유인 슬레이트로 된 허름한 18평짜리 단칸방을 빌려 17년째 오리 1300여 마리를 키우며 가난하게 살고 있다. 오리 사육장도 짓지 못한 채 집 근처 농수로에 오리를 풀어놓고 키우는 형편이다. 그는 청둥오리 새끼 10만 마리를 북한으로 보낸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최근 사업가인 매제(65)로부터 "집을 장만할 돈 1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나서다.

지의준씨(左)가 권근술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에게 청둥오리 10만 마리를 북한 측에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전익진 기자]

지씨는 매제에게 "그 돈을 우리보다 더 어려운 북한 어린이 돕기에 사용하겠다"고 제안해 승낙을 받아냈다. 그는 "'차량으로 불과 10분여 거리인 북한의 동포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3월 초부터 자신이 키우는 청둥오리 알을 모아 부화시킨 뒤 3주가량 사료와 황토를 먹여 건강하게 키워 1만 마리씩 10차례에 걸쳐 북한에 보낼 예정이다.

지씨는 "북한 측이 오리농장을 조성해 오리 10만 마리를 키울 경우 1년도 안 돼 오리 수는 100만 마리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오리고기와 오리알로 많은 북한 어린이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지씨는 11년간 남북 어린이 교류 및 북녘 어린이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남북민간교류단체인 '남북어린이 어깨동무'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18일 지씨의 집을 방문해 오리 사육장을 둘러본 권근술(66)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은 "지씨가 자신의 형편도 넉넉하지 않으면서도 거액의 돈과 노력을 들여 북한 어린이를 돕겠다고 나선 것은 뜻 깊은 일"이라며 "북한 측과 접촉해 지씨의 뜻이 꼭 실현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파주=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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