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짚신문화/이은윤(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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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짚신­.
1930년대까지만 해도 오늘의 운동화나 고무신을 대신하던 우리네 신발의 대종이었다.그러나 이제는 지난날 짚신을 신어봤던 노인들까지도 짚신 이야기를 하면 실용성이 없다며 요즈음 세월에 누가 짚신을 신느냐고 핀잔하기가 십상이다.
지금은 일부 유가 장례식에서의 상제들 상포용,굿판의 무당용,TV사극·영화제작용의 소품으로나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정도다.
우리는 60년대이후 경제개발로 좀 먹고 살만해지면서부터 짚신을 지지리도 못살던 지난날의 「가난」과 「미개」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이처럼 천대받으며 우리 주위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짚신이 최근 새롭게 시절인연을 만나 어엿한 과학성을 지닌 신발로 대도시 중산층 일부에 보급되고 있다. 통풍이 잘되고 발에 자극을 주어 발건강상 좋을뿐만 아니라 푸근한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땀이 차지않아 무좀예방이 잘되기 때문에 아파트 실내화,운전화 등으로 그만이라는 것이다.
또 주부들이 부엌일을 할때의 신발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짚신의 「부활」을 알리는 실감나는 소식들도 잇따르고 있다. 「짚신마을」이라는 별명을 가진 충남 연기군 의왕마을에서는 몇해전부터 짚신을 삼아 팔아 농한기에는 1인당 월 20만∼30만원씩의 부업소득을 올린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서울의 한 건강모임에서 실시하는 짚신삼기 강좌에 30∼40대 주부수강생들이 초만원이고,지난달말 한 대학에서 대동제행사의 하나로 개최한 짚신삼기 강좌에도 많은 학생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짚신­고무신­운동화­구두로 변해온 우리 신발문화의 변천속에서 끝내 사장돼버리고 말뻔했던 짚신의 부활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이제 한번쯤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문화는 원래가 「가난한 문화」 주조였다. 우리 민족정서의 심층 단면을 이루고 있는 「한」도 대부분이 가난에 기인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네 일상에서 가난을 대표하는 상징이던 짚신과 꽁보리밥.
「흰 쌀밥 한번 실컷 먹어보고 죽으면 원이 없겠노라」던 가난과 평생 구두 한번 신어보기를 「원」으로 간직한채 일생을 살고간 민초들의 가난한 문화가 바로 우리의 문화 역사였다.
짚신문화가 되살아나고 서울 도심에 꽁보리밥집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으면서 자가용족들의 입맛을 돋우는 오늘의 시대 흐름은 바로 이같은 민초들의 존재를 되살려내는 해원이고 「먹거리 문화」의 평등화가 아닐까 싶다.
문화인류학자들은 「가난한 문화」와 「가난의 문화」를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로 구분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문화는 비록 사람들이 경제와 지식수준은 얕을지라도 자신들의 전통과 정체성을 자랑하고 고집스럽게 보존하는 반면 중남미가 본보기인 가난의 문화는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도록 교육 받아 자신들의 문화전통과 피부색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짚신문화의 부활을 반기는데 인색지 말아야한다. 일제의 식민사관 교육과 서구문화의 우월성을 신봉하고 수용하는데 급급하던 근대화과정에서 느껴온 「열등의식」에 다시금 얽매이는 일이 없어야겠다.
짚신은 우리 일상의 삶에서 아주 긍정적인 문화전통을 가져왔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은 아무리 얼굴이 못나고 신분이 비천할지라도 배필을 만나 결혼해 잘살 수 있다는 뜻으로 비관과 절망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긍정」을 가르쳐 주었다.
보다 의미심장한 짚신 고사도 많다. 중국불교 선문의 남전보원(남천보원·748∼834) 선사는 고양이의 불성 유·무를 놓고 동당과 서당의 수좌들이 갈라져 다툼을 벌이자 고양이를 번쩍 들어올려 예리한 칼로 일도양단해 버렸다. 고양이는 선혈이 낭자한채 두동강이 나버렸고,고양이를 베기전 『깨친바 한마디를 이르면 고양이를 살려주겠다』던 남전의 호통이 멀리 메아리져 가는 가운데 수좌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돼버렸다.
저녁이 돼 외출했던 수좌 조주도심(778∼897)이 돌아오자 남천 스님은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너 같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물었다.
조주는 두말없이 짚신을 머리에 이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남천은 『네가 있었으면 고양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텐테…』라고 아쉬워했다.
의관을 갖출때 점잖은 갓을 쓰는 머리위에 온갖 오물을 밟고 지나치는 짚신을 인 조주의 역행에는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다. 즉 진리의 세계란 때론 현실의 현상계와 정반대일 수 있다는 선가의 교외별전적인 몸짓인 것이다.
선문 1천7백 공안중의 하나이기도 한 「남천참묘와 조주두재초혜」는 전자가 무명을 불러 일으키는 분별심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라면 후자는 현실속의 차별심을 보여주는 철저한 「긍정」이었다. 또 조주가 머리에 짚신을 인 것은 귀천을 구별하는 차별심만 없애면 모두가 진리고 갓과 짚신을 구별하지 않아도 되는 지혜안을 얻을 수 있다는 남전의 가르침을 한차원 높게 강조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도 스위스제 발리구두와 우리 짚신을 차별치 않는 평등심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가치들을 새롭게 인식해 나가야 할 때가 됐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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