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이전(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어느 국사학자가 현국립중앙박물관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두고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일제가 총독부 건물을 일본의 상징인 「일」자형으로 지은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일제는 그것도 모자라 지금의 서울시청(구경성부청)을 지을때 그 건물을 「본」자형으로 설계,두 건물을 연결하면 바로 「일본」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청와대 뒷산이 공중에서 보면 「대」자 모습을 하고 있어 이 셋을 합자하면 「대일본」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 학자의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는 몰라도 일제가 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우리 민족의 상징인 경복궁의 정면 4천칸을 헐어 냄으로써 우리의 자존심을 하루아침에 뭉개버린 것은 사실이다.
그 총독부 건물이 새삼 국민여론의 심판대에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문화부는 그 건물을 쓰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이전계획과 관련,서울시민과 관계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시민의 53%,전문가의 65%가 애당초 박물관이 그곳에 들어간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마땅한 건물이 없더라도 일제식민통치의 산실이었던 치욕의 건물속에 우리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유산을 수용한다는 것은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시민 65%,전문가 77%가 현박물관의 완전 철거나 이전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박물관의 이전이지만,그에 못지 않게 관심을 모으는 것이 총독부 건물의 철거문제다.
박물관의 이전은 그리 간단한게 아니다. 루브르 같은 기존건물을 이용하더라도 시설개조에 오랜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새건물을 지으려면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 박물관은 아니지만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워싱턴 모뉴먼트는 계획에서 완공까지 1백년이란 긴세월이 걸린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국립박물관의 이전은 기정사실이라 하더라도 적지선정에서부터 설계,시공에 이르기까지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셋방살이로 전전하게 하면서 총독부 건물만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