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 정권 돈줄' 또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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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엔개발계획(UNDP)의 대북 사업자금 운용을 문제 삼은 미국 정부의 의도는 무엇일까. 외교가에선 미국이 북한 정권의 외화 조달선을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 미국이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사실상 양자협상 형태의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여는 등 어느 때보다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건 왜일까.

결국 마카오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자금을 동결하고 금강산 관광.개성 공단 사업을 반대한 것처럼 미국이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북.미 관계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제재의 새로운 아이템으로 UNDP 자금이 떠오른 것이다.

◆강경파의 개입?=UNDP의 대북 지원 사업 자금이 북한 정권으로 유입된다는 의혹은 마크 윌리스 미국 유엔 대표부 차석대사가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사퇴한 존 볼턴 전 유엔대사와 더불어 대북 강경론자로 분류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에 볼턴 전 대사의 영향력이 미쳤다는 얘기도 내놓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과 딕 체니 부통령 등과 대북 강경파 그룹을 이루고 있는 볼턴 전 대사는 최근 일본에서 "김정일 정권이 붕괴돼야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강력한 압박정책"을 주장했다. 이번 논란을 촉발한 신문이 미국의 대표적 보수 언론인 월스트리트 저널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대북 강경파들은 6자회담을 축으로 진행되고 있는 북한 핵 폐기 협상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 왔다. '외교적 해결'을 앞세우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등의 온건파와는 상반된 입장이다.

이번 일이 국무부와 사전에 조율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강경파의 돌출 행동'이라는 해석부터 핵 폐기 조치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도록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이란 주장까지 다양한 말이 나온다.

◆UNDP 자금 어떻게 쓰였나=미국 정부 일각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북한 측에 직접적으로 현금이 지급되고 있는 부분이다. 평양에 있는 UNDP의 북한 현지 직원은 20명이라고 한다. 이들의 임금과 사무소 임대료 명목으로 연간 수십만 달러 이상의 현금이 지급됐는데 실제 명목대로 돈이 쓰였는지 검증할 수 없다는 게 미국 쪽 걱정이다.

결국 미국 측의 의혹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명분으로 대북사업을 진행했으나 결과적으로 핵개발 자금을 집어준 꼴이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의혹이 현실정책으로 전환될 경우 UNDP 문제가 BDA 문제처럼 확산될지 주목된다.

2005년 9월 6자회담이 공동성명을 합의할 무렵 미국 재무부는 마카오의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전격 지정했다. 공동성명 발표 뒤 북한은 뒤늦게 "미국에 뒤통수를 맞았다"며 항의했다. 북.미 간 상황이 악화되면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핵 실험이 이어졌다.

현재 미국과 북한은 베를린 회동에서 핵 폐기 초기 조치 이행 문제에 상당히 의견을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남정호 특파원, 서울=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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