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한국판 ‘비참 세대’ 될까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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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올 초 성균관대에서 사무보조원 한 명을 뽑는 데 경쟁률이 401대 1을 기록했다. 전문대 졸업 이상 학력 여성이 조건이었는데, 지원자의 30%가 4년제 대학 졸업자였고 석사학위 소지자도 5명이나 됐다.

지난해 말 서울 북부지검에서 검찰 관용차를 운전할 10급 기능직 공무원 한 명을 뽑는 데도 206명이 몰렸다. 역시 지원자의 30%가 대졸자였고, 2월에 석사학위를 받을 대학원생도 끼어 있었다.

여성 사무보조원의 첫해 연봉은 약 2000만원, 10급 기능직 공무원의 월 초임은 100만원대 초반이다. 대우가 그리 좋지 않은데도 이렇게 고학력 지원자가 몰린 것은 사무보조원이 정규직이고, 운전기사는 기능직이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란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해서다.

그리고 그 뒤에는 대졸 20대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안정적인 직장을 붙잡자는 심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비정규직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시장이 불안해지면서 급증했다. 그 개념을 놓고 정부와 노동계의 입장이 달라 얼마나 되는지 통계를 내기도 힘들지만, 노동부 공식 통계로도 비정규직은 전체 근로자의 36%나 될 정도로 많다. 2001년 365만5000명이었던 것이 지난해 545만7000명으로 5년 사이 1.5배로 불어났다.

생산인구의 핵심은 20대와 30대다. 그런데 한창 일해야 할 이들 2030세대 250만여 명이 신분이 불안하고 봉급도 적은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갉아먹고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특히 막 사회에 진출하려는 20대가 걱정이다. 우선 지난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20대 실업자가 34만 명이다. 그에 따른 실업률이 7.7%로 전체 평균 실업률(3.5%)의 두 배를 넘는다.

이런 판에 어쨌든 일자리를 구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일까? 하지만 20대 임금근로자 368만9000명 중 30.9%인 114만1000명이 비정규직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30대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실업률은 3.0%(실업자 19만4000명)로 평균보다 낮지만 역시 30대 임금근로자의 30%에 해당하는 138만5000명이 비정규직이다.

2004년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이 37%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면서 사회문제화하자 정규직 일자리가 조금 회복돼 지난해 처음으로 비정규직 취업자가 감소했다. 2005년(548만3000명)보다 2만6000명 줄었는데, 대학 졸업 이상 비정규직은 9만7000명이나 늘었다.

중학 졸업 이하와 고졸 비정규직은 감소한 가운데 대졸 이상만 증가한 것이다. 이는 그만큼 대학을 나온 2030세대의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형편이 이러니 20대 대졸자의 취업난을 빗댄 신조어가 줄을 잇는다. 공기업 취업자를 ‘신의 아들’, 사기업 취업자를 ‘사람의 아들’, 백수는 ‘어둠의 자식’으로 부른다.

‘3대 입시 클러스터’란 말도 있다. 고교 시절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몰렸다가 대학 시절에는 신림동 고시촌, 졸업한 뒤에는 노량진 공무원시험 학원가를 전전하는 모습을 빗댄 표현이다.

2006년 일자리 창출 실적은 29만5000개. 지난해 초 정부가 제시한 목표 40만 개는커녕 하반기에 수정 제시한 35만 개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보다 성장률이 떨어질 올해도 역시 30만 개 일자리 창출은 어렵다. 이러다간 1990년대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취직 빙하기를 거친 일본의 20대를 지칭한 ‘비참(悲慘)세대’가 한국에 나타날까 걱정이다.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은 개헌 논란에 휩싸여 있다. 경제는 안정된 정치·사회 환경에서 자라나는 나무다. 기성세대, 특히 정치인들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산업현장에서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그린 신조어가 잇따라 나오도록 지금은 경제를 살리는 데 힘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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