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민생과 따로 노는 경제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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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과천의 재정경제부 청사엔 오후 9시 전에 불이 꺼지는 법이 없다. 그만큼 일이 많다. 직원은 모두 열심히 일한다. 한 사무관은 며칠씩 과로한 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재경부는 그 바쁜 와중에도 지난해 12월부터 50일째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인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분야'라는 주제다.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파악해 우선순위를 조정하자는 취지다.

조사 결과 응답자들이 가장 바라는 정책으론 단연 '경기회복'이 꼽혔다. 전체 응답자 85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74명에 달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부동산시장 안정'에도 24%의 응답자가 몰렸지만 경기회복이 더 시급한 정책 과제로 꼽혔다. 셋째 관심사는 '서민경제 안정'(16%)이다. 국민이 바라는 정책의 우선순위 1~3위가 모두 민생과 관련된 것이다.

반대 시위로 떠들썩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중시하는 응답 비율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의 역점 사업인 '사회복지 시책의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은 응답자는 2%에 불과했다.

정부는 분배와 형평을 강조하며 이런저런 복지정책을 만들어 내느라 바쁘지만 정작 국민의 관심권에선 벗어나 있는 셈이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체감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은 생활에 직결된 경기회복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정부가 생각하는 정책 우선순위와 국민의 정책 수요가 상당 부분 어긋나 있음을 보여 준다.

경기회복의 특효약처럼 꼽히는 '투자 활성화'를 선택한 응답자가 3%에 그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동안 정부가 각종 투자 활성화 대책들을 내놓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이 같은 응답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결과를 보면 국민이 절실하게 바라는 정책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과 후손의 미래를 위한 일'과 같은 추상적 구호엔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재경부 직원들이 밤늦게까지하고 있는 일들이 과연 민생을 해결해 주는 것들인지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공무원은 제대로 바빠야 한다.

김동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