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문화의 '원초적 본능'을 읽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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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인들은 음식을 먹은 뒤 "배가 찼다"고 말하고, 프랑스인들은 "맛있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에게 음식이란 밥통을 채워넣어 몸이 굴러가게 하는 '연료'다. 그러나 프랑스인에게 음식을 먹는 목적은 쾌락이자 예술 감상 행위다. 프랑스에서는 훌륭한 요리사를 교향악단의 지휘자와 같은 단어 '쉐프(chef)'로 부른다. 미국은 음식의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고, 프랑스는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것은 음식에 대한 '컬처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정신분석학자이면서 마케팅을 연구한 클로테르 라파이유 박사는 '컬처 코드'를 세상을 해석하는 틀로 제시한다. 컬처 코드란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라고 정의된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말하는 '모범 답안' 저 너머에는 '원초적 본능'이 숨어 있다. 자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그 본능, 즉 컬처 코드에 따라 사람들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미국인들의 컬처 코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역사가 짧아 문화적으로도 젊은 단계에 있는 미국의 청년기적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 문화는 현재에 대해 집중하기, 극적인 감정의 동요, 극단적인 것에 대한 매혹, 실수를 해도 다시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는 확신 등 '성장을 거부하는 영원한 젊은이'의 특성을 지닌다. 일본의 자동차회사 마쓰다는 미국에서 미아타란 브랜드의 자동차를 '젊은이를 위한 초보자용 스포츠카'로 홍보했다. 정작 구매층은 55세 이상인데도 이 전략은 먹혀들었다. 청년기는 완벽함보다는 미숙함에 어울린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은 '10년 무상수리 보증제도'였다. 미국인의 품질 코드는 '완벽함'이 아니라 '작동한다'라는 사실을 제대로 간파한 것이다.

늘 청년처럼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는 미국인에게 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을 '헛된 기대(False Expectation)'다. 미국에서는 젊은이처럼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건강의 문화 코드다. 그래서 미국의 노인들은 은퇴한 뒤에도 다시 일을 시작하려 애쓴다. 휠체어에 앉으면 사형선고라도 받은 양 낙담한다.

"당신은 무엇을 하십니까(What do you do)"란 질문은 미국에서만 유독 직업이 무어냐는 뜻으로 통한다. 미국인에게 직업의 컬처 코드는 '정체성'이다. 직업의 컬처 코드를 분석하면 노사관계 해결책도 보인단다. 직업이 곧 정체성인 미국인의 경우, 직원이 긍정적인 정체성을 갖도록 독려하는 게 효과적이다. 리츠칼튼 호텔의 경영진은 자사 직원을 '신사숙녀를 섬기는 신사숙녀'라고 칭한다. 그런 리츠칼튼의 직원들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단다. 반면 일보다는 쾌락을 선호해 쉽사리 실직상태를 택하는 프랑스인들은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고싶어 한다. 휴양지를 운영하는 클럽 메드는 '지배인' 대신 '촌장'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일과 노는 것의 구분을 없애다시피 해 적은 급료를 주고도 직원을 고용할 수 있었단다.

대통령을 뽑는 일에도 컬처 코드가 작동한다. 영국 지배에 반란했던 미국인들은 반란군 지도자가 필요했다.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비전을 갖추고 국민을 약속된 땅으로 이끌 수 있는 '모세'다. 지은이는 경쟁자보다 조금만 더 비전을 강렬하게 제시하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다고 분석한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국인의 대통령에 대한 컬처 코드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저자의 주장대로 컬처 코드를 통해 마케팅이나 선거, 노사관계까지 풀어갈 수 있다면 그걸 연구하지 않을 까닭은 없을 듯하다. 반대로, 우리가 지갑을 열거나 투표 용지에 도장을 찍으면서 이성이 아닌 '코드'의 명령을 따르는 건 아닌지 경계할 일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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