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표절 시비 객관적 사실 부연 설명에 불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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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본지 5월27일자 15면에 게재된「역사학계도 표절시비 몸살」이란 제목의 보도에 대해 당사자인 이기순 교수(홍익대 역사교육과·전임 강사)가 반론을 보내왔다. 이 교수는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비판한 오수창씨(외국어대 강사)의 주장에 대해 논지상의 문제와 표절시비로 나누어 반박하고 있다. 오씨는 조선 인조시대정치를 분석한 이교수의 논문이 역사해석에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자신의 석사논문 등을 무단인용(표절)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었다.【편집자 주】
지금까지 한국사학은 역사사실의 미개척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함께 시대상황의 변천에 따라 계속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하여 성장해왔다. 그 결과 다양하고 새로운 견해는 점차 주목을 받아봤고 이 과정에서 한국사연구는 발전해왔다. 이와 같은 점에서 오수창씨가 계간『역사비평』여름호에 기고한 글과 이에 대한 중앙일보 보도 등을 통하여 본인의 박사학위논문에 대해 제기한 문제는 본인논문이 지향하는 본질을 호도하는 측면이 많다. 먼저 오씨의 문제제기가 내포하는 의도와 동기가 척박해진 사학계의 현실을 반영한 듯하여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오씨의 주장은 본인의 학위논문이 오씨의 석사논문과 기타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무단 전재하여 논지와 서술 상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의 오해와 편의적 해석이 확인되므로 반론을 제기한다.

<논지상의 문제점에 대하여>
오씨의 주장은 정파간의 공존을 설명하려는 이른바 붕당정치론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결과 오씨는 조선 인조시대를 붕당정치가 가장 성숙된 시기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인조반정」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인조반정」은 인조의 친인척 무신들이 주도한「무신쿠데타」일 뿐이다. 정변 후 집권공신세력은 일부서인과 남인 문사들을 기용하여 여론을 무마하려 하였다. 한편으로는 반 후금정책을 표방함으로써 집권 명분을 강화하였다. 계속해서 자신들의 세력기반인 사병을 공적인 군사력에 편입하고, 비변사를 정치기구로 강화하여 합법적으로 군권과 행정권을 장악해 나갔다. 군사력의 배치문제에 있어서도 정권유지를 위한 수도방위체제 구축에만 치중하였다. 이 때문에 두 차례의 호란에서 치욕적 패배를 자초하였고,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하였다. 게다가 대청관계에서 주화론으로 선회함으로써 반정의 명분까지도 스스로 포기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재야 사림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공신세력의 정국 주도 능력의 한계를 노출시킨 것으로, 산림세력이 정계로 진출하는 명분만 제공해 주었다. 따라서 오씨의 논지처럼 무신세력의 존재를 간과하는 시각은 인조대 정치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약점을 지니게 된다.

<표절시비에 대하여>
본인이 타인의 논문을 표절한 것처럼 언급한 주장에 대해서 먼저 오씨에게 되묻고 싶다. 본인은 서론 부분에서 분명히 관련논문을 언급했고 참조하였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도 본인논문의 대부분이 남의 연구성과를 무단 전재하여 기술되었다고 주장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학문상의 표절이란 타인의 논지를 무단 전재하는 것을 말한다.
오씨가 표절에 가깝다고 주장한 부분은 주로 국사학계에서 널리 이용하는 자료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을 부연 설명함에 불과하며, 본인논문의 논지상 핵심 부분도 아니다. 만일 본인이 의도적으로 타인의 논문(특히 오씨의 논문)을 표절하였다면, l990년「전국역사학대회」와 같은 공개학술토론장에서 오씨를 약정토론자로 지명했겠는가. 다만 오씨가 지적한 각주처리상의 문제점은 이를 바로 잡아 일부는 학회지에 이미 기고한 상태다. 차후 오씨는 어떤 저의를 가진 문제제기가 아니라면 「표절시비」로 논지상의 분명한 견해 차이를 호도하지 말고, 보다 생산적인 학술 연구토론의 창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이기순<홍익대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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