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파리” 베이루트 옛모습 되찾는다(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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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6년 내전종식… 해외에 도피했던 이들 속속 귀국/수도갈랐던 「녹색선」 사라지고 평화의 거리로
레바논이 오랜 내전을 끝내고 과거 「중동의 파리」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요즈음 베이루트의 병원에는 전투부상자 대신 자동차사고·축구경기 부상 등으로 입원한 환자들이 병실을 메우고 있다.
내전을 피해 국외로 도피했던 수천명의 레바논인들이 베이루트로 돌아가 학교는 전입학생들로 새롭게 북적대고 있다.
시민들이 도시건물 벽에 붙어있던 민병대 희생자들의 얼굴사진을 떼어내고 연주회나 카니벌을 위한 천연색 포스터를 붙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레바논은 16년간의 내전을 겪으면서 15만명의 희생과 4백만인구의 4분의 1이 국외로 탈출하는 국가붕괴의 위기를 경험했다.
오랜 내전에 의해 파괴된 베이루트시내에 조용한 평화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엘리아스 하라위 레바논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레바논 정부군들은 최근 몇년만에 처음으로 마론파 가톨릭교도와 드루즈파 회교민병대들이 장악하고 있던 베이루트 북동쪽과 남동쪽 지역에 진주, 이 지역에 대한 정부의 통치권을 회복했다.
진주한 정부군에 마론파와 드루즈파 민병대원들은 아랍연맹이 합의한 평화계획에 따라 평화롭게 무기를 넘겨줬다.
이에 앞서 민병대들은 평화계획 1단계조치로 베이루트에서 모두 철수했다.
오는 7월1일부터 시작되는 마지막 단계의 평화계획이 완료되면 레바논은 완전히 평화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7월1일부터 레바논 남쪽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이스라엘의 지원을 받고있는 남부레바논군,동쪽의 이란 혁명수비대,그리고 시아파 회교도 민병대인 헤즈볼라(신의 당)등이 무장을 해제하고 레바논정부군에 무기를 넘겨주도록 돼있다.
이러한 남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75년에 시작된 내전은 이미 완전히 끝난 느낌이다.
베이루트의 기독교지역과 회교도지역 사이에 가로놓여있던 녹색선은 레바논육군의 불도저에 의해 자취를 감췄다.
시민들은 10여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녹색선 건너에 있는 친구들을 방문하고 있다.
기독교 민병대사령관 사미르 지아지아와 드루즈파 전쟁영웅 왈리드 줌블라트는 최근 전쟁종식을 공식선언했다.
레바논 일간 아스 사피르지는 이 공식선언을 「민병대시대의 공식적인 사망선고」로 표현했다.
레바논 평화는 지난 89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이프에서 열린 아랍연맹회의에서 계기를 맞았다.
이 회의에서 ▲회교파 국회의원 수를 늘려 기독교파와 같게 하고 ▲군과 정부의 기독교파 독점을 개선하는 한편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내각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국민화해 헌장을 채택했다.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친시리아 아말파와 친이란 헤즈볼라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전면정전에 합의했다.
이같이 각계파의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시리아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하라위 레바논대통령이 지난 76년부터 아랍연맹의 권고에 따라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4만 시리아군의 지원을 얻어 레바논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베이루트는 지난 75년 이전의 중동 상업중심지로 되돌아가기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등 걸프지역 국가들의 상당한 지원이 기대되고 있어 희망적인 관측이 지배적이다.<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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