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제공을 둘러싼 손길승 SK그룹 회장의 고백이 정치권을 조이고 있다. 최근 재계 인사들의 모임에서 孫회장이 "지난해 연초 민주당에 후원금 25억원을 이미 줬는데, 대선 기간 중 이상수 의원이 찾아와 '당신들이 민주당에 낸 돈은 그들이 다 쓰고 우리는 한푼도 못 쓰니 민주당에 준 만큼 달라'고 해 다시 25억원을 만들어줬다"고 했던 발언이 한 참석자에 의해 언론에(본지 11월 13일자 3면) 공개되면서다.
◇민주당으로 불똥 번지나=孫회장의 발언은 언뜻 보기엔 이상수 의원이 돈을 요구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내면 화살은 민주당을 향한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민주당에 낸 돈은 그들이 다 쓰고 우리는 한푼도 못 쓴다'는 대목이 이런 해석을 낳는다. 여기서 '그들'은 민주당 구주류라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을 공격하지 않았다. "孫회장을 접촉한 사실이 없으며 먼저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는 이상수 의원의 해명만 내놨다. 그 배경이 뭘까.
이미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포함, 노무현 캠프의 핵심 인사들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 차원에서 나서지 않아도 불길이 될 불씨라는 계산이다. 한 당직자는 "볼썽사납게 싸우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최근 계속된 민주당의 대선자금 공세에도 이상수 의원이 "내가 입을 열면 민주당은 공중분해된다"고 으름장만 놓은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했다. 결국 李의원이 폭로할 수 있다고 했던 내용엔 孫회장의 고백도 포함된다는 얘기다.
盧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이런 얘기를 꺼냈다. 盧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직후 상황이다. "당시 자금을 모았던 민주당 핵심 인사가 후보 결정이 된 후 盧후보 측에 '당에 남은 잔금'이라며 건넨 돈은 불과 10억원 남짓이었다"며 "盧대통령이 후보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바로 그 핵심 인사는 '돈은 충분히 모아뒀다'고 큰소리쳤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심 인사가 모았다는 액수도 알지만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盧대통령도 당시 그 핵심 인사에 대해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고 그는 전했다. 여권은 대선자금 수사의 종착역은 민주당이 대선 전에 거둬들인 자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펄쩍 뛰는 민주당=민주당은 孫회장의 발언을 즉각 반박했다. 한화갑 전 대표는 이날 "내가 대표가 되고 보니 후원회에도 당에도 돈이 없었다"며 "대표로 있는 동안 후원회에서 '당에 돈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당에는 후원금이 한푼도 안 들어왔고, 선대위가 꾸려지면서 그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민주당 후원회장이었던 한나라당 박상규 의원은 "후원회장으로 있는 동안 후원회를 연 적이 없고, SK에서 우리 당에 돈을 주겠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부터 사무총장을 맡았던 유용태 의원은 "SK가 중앙당 후원회에 돈을 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SK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고, 모르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jongtack@joongang.co.kr>
<사진설명전문>
당내 소장파로부터 '중진퇴진론'의 표적이 된 민주당 박상천 대표(왼쪽에서 둘째)와 정균환 총무(左)가 13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기자들에게 나가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오종택 기자]사진설명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