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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고수한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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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1992년 봄 한국 증시에 '멍멍이 시리즈'라는 대형 필화(筆禍) 사건이 터졌다. 한 증권사 연구원이 부도 가능성이 있는 25개 기업의 실명을 거론한 '멍멍이 찾기 시리즈'라는 보고서를 낸 게 시장을 발칵 뒤집어놓은 것이다.

당시 보고서를 쓴 주인공은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사진) 부장. 해당 종목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정 부장에게는 기업과 투자자들의 항의와 비난이 빗발쳤다. 심지어 금융감독 당국에서 경고가 날아와 회사가 징계를 받는 등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그러나 결국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후 정 부장이 거론한 기업 가운데 18개사가 부도 등으로 관리종목이 되거나 사라지면서 정 부장의 보고서는 증권가의 전설이 됐다. 그는 그 뒤에도 대우 그룹 사태의 위험을 경고한 '이무기가 돼 버린 용에 대한 보고서' 등 시장의 맥을 짚은 굵직한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으며 증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이력과 달리 그가 개인투자자들에게 내세우는 투자 원칙은 고리타분할 정도로 단순하다. 한마디로 "매년 실적이 좋아지는 '명품 주식'에 장기 투자하라"는 것. 이를 위해서는 열심히 재무제표와 차트를 공부하고 자신에게 맞는 투자 원칙을 지켜나가는 게 필수적이다.

그는 이 같은 '명품 주식'을 찾는 방법으로 주당 순이익(EPS.당기순이익을 해당 기업의 발행 주식 수로 나눈 값)을 눈여겨볼 것을 권했다. 정 부장은 "이익의 절대 규모가 아니라 한 주가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EPS를 통해 주식 가치를 비교적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며 "EPS가 추세적으로 좋아지는 기업이라면 계속 성장세를 이어갈 확실한 기술이나 제품이 있는 기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바이오.나노 등의 테마를 형성하며 주가가 오르고 있는 코스닥 성장주에 대해서는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 특히 사명을 자주 바꾸는 기업과 액면가를 수시로 변경하는 기업들은 명품이 아닌 '짝퉁' 주식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부장은 "액면가 500원인 코스닥 기업들의 주가를 5000원으로 환산해보면 상당수 코스닥 기업의 주가가 수십만원대"라며 "액면가 500원에서 생기는 착시현상 때문에 실적이 나쁜 주식을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부장은 특히 주식에 직접 투자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익을 내기보다 손실을 덜 볼 궁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익을 남기면 그만큼 돈을 빼 안전한 상품에 투자하고, 장세 판단이 틀렸다면 과감하게 손절매해 다음 기회를 노리라는 것이다.

그는 "초보 투자자들은 신문에 나오는 재야 고수의 연 수백% 수익률에 현혹돼 증시에 뛰어들지만, 이는 대부분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이룬 것"이라며 "자제력만 갖춘다면 주식 투자에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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