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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선시 읊조리던 나옹-회암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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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는 높디 높은 정신의 나뭇가지 끝에 매달리는 이슬 같은 것, 저 신라로부터 고려에 이르는 불교 천년의 절정에서 마침내 시로써 불법을 다 파헤친 큰 선시인이 있으니 그가 곧 나옹이다. 그의 속성은 기씨이고 이름은 혜근이며 호는 강월헌이었다. 나옹은 고려가 끝나 가는 충숙왕 7년 (1320년) 선환서영이라는 벼슬을 하는 서구의 아들로 영해부에서 태어났다.
나옹은 어머니 정씨가 황금빛 새가 날아와 품에 알을 안겨주는 태몽을 꾸고 낳았다고 하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사물에 대한 물음을 곧잘 던졌고 스스로 그 해답을 구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스무살 되던 해 그는 글공부를 함께 하던 친구의 죽음을 보게 된다. 그는 이 죽음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문경에 있는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 선사를 찾아가 불문에 들어서게 된다.
죽음에 대해 묻는 나옹에게 요연은 대답한다 「나도 아직 모르고 있다. 다른 스님에게 가서 길을 물어 보라」고.
물론 나옹의 그릇이 큼을 알아본 요연의 가르침이었다. 그는 다시 큰절의 이름난 스님을 찾아 두루 돌아다닌다.
25세 때 나옹은 마침내 양주의 회암사에 이르러서야 좌선의 자리를 펴게 되었다. 어느날 이 절에 있던 일본 중 석옹 화상이 설법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대중은 듣느냐」고. 아무도 대꾸하는 이가 없었는데 나옹이 시로 대답한다.
「부처를 고르는 방 가운데 앉아/눈을 밝히고 보라/보고 듣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요/본래 옛 주인인 것.」
이 회암사에서 나옹은 4년의 정진 끝에 문득 깨우침을 얻는다. 그러나 그는 더 넓은 세계로 발걸음을 옮긴다. 28세 때 원나라의 북경에 가서 법원사에 있는 인도의 중 지공을 만난다. 그는 시를 지어 올렸다.
산과 물과 들은 눈앞의 꽃이요 삼라만상 또한 그러한 것.
불성은 본래 깨끗한 것임을 깨달았거니 티끌마다 세계가 다 부처네. 지공은 나옹과의 선문답에서 공부가 깊음을 알고 받아주었고 판수의 자리를 주기까지 했다. 두햇동안 불법을 닦은 나옹은 중국 땅의 큰절을 찾아다니며 평산·천암 등 고승들과 선문답으로 그의 선사상의 산과 바다를 일궈 냈다.
마침내 그의 수행은 원나라 황제에게까지 알려지는 바 되어 북경의 광제선사의 주지로 개당법회를 연다. 이때 황제와 황태자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를 보냈으며 중국 각지의 고승들이 모여들어 그의 설법을 들었다.
그는 지공의 가르침을 받아 39세 때 고려에 돌아온다. 공민왕은 나옹을 내전으로 불러 설법을 듣고, 신광사 주지로 임명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용문산·원적산·금강산 등을 돌아다니며 대연과 문답을 하고 화두를 꺼내 스스로 시로 묻고 시로 대답하며 하늘에 나는 새와 같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와 같이 법해를 넘나들고 있었다.
산은 왜 산봉우리에서 끝나는가
물론 왜 개울을 이루는가
밥은 왜 흰쌀로 짓는가
(산하악변지 수하도성거 반하백미조 「삼전어」)
15자로 지어진 이 시는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다. 도대체 얼마마한 깨달음이어야 시가 여기에 도달한다는 말인가. 나는 어리석게도 질문과 대답이 따로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한 줄의 시에 머리를 처박고 몸을 뒤튼다. 시는 이렇게 쓰는 것을,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을.
이 짧은 「삼전어」에서 나옹시의 극치를 보게 된다. 이것은 선시며 화두며 곧 법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참선의 오랜 수행 끝에 얻어낸 아주 명쾌한 깨우침이다. 「물음이 곧 대답이다」라는….
47세 때 공민왕은 나옹을 청평사에 머무르게 한다. 거기에서 그는 스승 지공이 보내온 가사와 편지를 받고 50세 때 회암사에 돌아와 주지로 있을 때 지공의 영골과 사리를 받는다.
나옹의 행장에는 지공과의 선시 문답이 자주 나온다.
지공이 수어 한다.
선은 안이 없고 법은 밖이 없다
뜰 앞의 잣나무도 아는 사람만이 사랑하는 것
청량대위의 맑은 날에 동자세는 모래알도 동자가 안다
나옹은 답한다
들어가도 안은 없고
나와도 밖은 없네
티끌마다 세계는 모두 부처가 되는 길이네
뜰 앞의 잣나무가 잘 보이니
오늘은 사월 초닷새 날.
공민왕 20년 (1371년) 그는 52세로 왕사에 오른다. 왕사는 임금을 보필하는 최고의 승직이면서 국정까지도 참여한다. 「왕사대조계종사 사선교도총섭 근수본지중흥시 풍복국우세 보제존자」라는 긴 직함을 받았는데 불교가 국교이던 고려에서는 임금 다음의 권력과 명예가 주어지는 자리다.
나옹은 공민왕의 부탁으로 양종오교의 모든 산이란 산의 선승들을 모아놓고 선식을 연다. 그러나 이미 선경에 이른 그의 시안에 들어올 시는 오직 환암만이 지울 수 있었다. 나옹은 회암사를 중창하고 스승 지공의 영골과 사리를 모신 부도를 세운다.
기록에 따르면 회암사는 이미 나옹이 태어나기 5년 전인 충숙왕 15년 (1328년)에 지공 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나옹이 회암사에서 좌선한 것도, 중국에 가서 다시 지공에게 선법을 이어받은 것도, 그리고 돌아와서 회암사를 중창한 것도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일이다.
회암사는 지공이 세웠다지만 그 장엄한 빛을 심은 것은 나옹이었다. 나옹은 회암사를 다시 짓고 낙성 법회를 연다. 고려당의 사람은 누구나 이 무차 대회를 보고자 했다. 회암사로 가고 오는 길은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하늘을 가리고 산을 덮는 나옹의 설법이 나날이 높아감에 우왕은 멀리 영원사로 가도록 명한다. 나옹은 회암사를 떠나면서 열반문을 돌아나간다. 이미 죽음을 예감한 것이리라. 그는 영원사로 가는 도중 법을 얻어 여주 신륵사에서 열반에 드니 세수 57로 법랍 37세였다.
그의 영골과 사리는 역시 스승 지공의 부도가 있는 뒷자리에 탑으로 안치되었다.
그러나 나옹은 깊은 수행과 좌선이 이를 선승으로서의 심오한 경지와 깨달음 위에 선사상을 시로 형상화시킨 독보적인 시인이었다. 『나옹집』에 실린 시만도 5백여수가 되고 그밖에도 「백납가」 「고누가」 「완주가」 등 장시를 남기고 있다.
글자 하나에도 우주보다 넓은 선의 세계를 담은 나옹의 촌철살인의 시편들은 이미 그 섬광을 말했거니와 아무래도 2백 행이나 되는 장시 「백납가」에서 그의 천의무봉의 시 정신과 선 사상의 극치를 읽게 된다.
달도 잊은 채 홀로 산에 산다한 해가 다가도 산을 싫지 않고 고사리 캐고 땔감 줍고 밥지으며 헤어진 누더기 옷을 즐겨 입는다 어느 해인가 모르고 해를 보내며 늙고 젊은 것, 무상한데 먼저가 있고 나중이 있겠느냐 이 몸 늙는 것도 아랑곳없이 누더기 옷 속에서 해를 보내고 해를 보낸다.
헝겊을 백쪼가리 기웠다는 누더기 옷을 찬미한 이 노래는 다름 아닌 저 권세와 이익, 늙어 가는 따위의 세속적 삶에서 벗어난 기인의 세상 보는 눈이 초롱초롱 불을 밝히고 있다.
회암사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는 의정부에서 동두천으로 가다가 덕정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거기 천보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회암사는 조선조 명종 때 문정왕후의 총애를 받던 보우선사가 다시 일으켜 동방 제1의 도량이 되었으나 불교의 번성을 시샘하는 유림들의 1천1백통에 달하는 상소와 성토로 보우가 귀양길을 가다가 제주목사 변협에게 맞아죽음으로써 폐사된다.
칠봉산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천보산의 산자락에 회암사의 장엄한 한 시대를 증언하는 빈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태극 무늬의 돌층계와 당간지주·석축·맷돌·수조가 뿔뿔이 흩어져있다.
이 절을 세웠다는 지공과 나옹, 그리고 나옹의 큰 제자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의 부도가 나란히 서있다. 그 부도보다 더 높은 사리탑하나는 보우의 것이라고 하는데 말해주는 이가 없다.
3만3천평 땅에 승려가 3천명이나 살았다는 회암사는 주춧돌과 돌층계만 남겨놓고 뒤꼍에 1976년 새로 지은 회암사 대웅전에 꾀꼴이 소리가 날아들어 나옹의 선시을 읊조리고 있다.

<회암사지>
1
돌은 죽어서도
그대로 돌이 되는가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서
몸을 누이고 또 누이는가
흙에 덮여 있어도 눈을 뜨고
가고 오는 해를 지켜보는가
징을 맞아서 살은 돋아나고
불을 먹어도 뼈는
사리로 빛을 얻는가
돌은 살아서도
죽음 한 자락을 덮고 있는가
2
여기서는 절이 보이지 않는다
나옹 화상 깁고 기운
누더기 옷도 보이지 않는다
들 찔레 한 무더기
선시이듯 흰 이빨로 웃고 있는데
지공이 간다 꾀꼴
나옹이 간다 꾀꼴
푸드득 푸드득 돌들이 잠을 깨고
산문 밖에서는
빈 맷돌이 한낮을 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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