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선과 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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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기로 결정함으로서 남북한관계에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의 남북한 평화정착이 얼마나 빨리 또 얼마나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지느냐는 것은 남북한 당국이 국면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상황이 바뀌면 그에 대응하는 방법도 때로는 논리까지도 새로운 각도에서 현실에 맞게 생각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남북한관계와 관련해 우리는 바로 지금 그러한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표명이후 며칠동안 남한쪽 각계에서 백출하고 있는 대응책들을 보면 대부분이 그러한 상황인식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스럽게 하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거의가 종전과 다름없는 내용들을 되풀이해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껏 북한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시점에서 볼 때 현실성이 적은 남한쪽의 희망사항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상주대표부 설치,경제교류 확대방안 등이 그러한 예다.
이 모두가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해 거쳐야 할 필요하고도 바람직한 과정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런 공소한 문제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
우선 고려할 문제는 앞으로 북한이 후속적으로 어떤 제안을 해올 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지금의 정황으로 보아 북한의 대남정책논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 정책의 골간인 군축과 불가침선언 제의와 통일방안 논의를 위한 남한 각계각층과의 정치회의 제안은 계속 되리라 믿어도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북한의 의도가 유엔동시가입이라는 새로운 조건에도 어떻게 표출될 것이며 남한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생각할 때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것은 북한측이 군축등 평화정착문제를 유엔을 통해 제기하고 남한에 대해서는 통일방안 논의로 공세를 집중하리라는 점이다.
그 가능성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유엔가입 의사표명 직후인 29일 통일대원칙을 위한 남북한 정치인·학자·언론인이 대토론회를 갖자고 제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우리는 신축성 있는 대응책을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방침을 굳혀야 할 것인가 원칙도 마련해야 한다. 또 유엔에서 군축문제가 제기될 경우 국제무대에서까지 남북한의 대립이 연장되어 사태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는 점을 감안,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때다.
유엔가입을 강요당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남정책에 관한한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들이 궁지에 몰리지 않고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방안은 우리에게 없는가.
그러한 방안을 우리가 마련할 수 있다면 북한의 현실론자들의 입지도 강화돼 앞으로의 남북한관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에 새로운 사고를 촉구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로서도 들뜨지 않은 자세와 신축성 있는 새로운 접근방법 모색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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