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기초과학 육성 약속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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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비전 중에는 기초과학 육성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국정비전이란 국민과의 약속이다. 특히 기초과학 육성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가는 우리나라의 전성기가 이미 지났느냐, 아니면 앞으로 우리 앞에 자랑스럽게 펼쳐질 것이냐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이슈다. 이러한 면에서 기초과학과의 약속은 바로 우리 아이들과의 약속이다.

흔히 응용과학은 '바로 돈이 되고', 기초과학은 응용과학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데 이는 국가 위상과 경쟁력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고 아마추어적인 생각이다. 기초과학은 국가위상과 경쟁력 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국부 창출 면에서도 그 기여도가 응용과학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중국이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린 것은 중국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어마어마하게 높였으며 이제 세계 누구도 중국을 무시할 수 없으며 중국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에 둘러싸였으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 제품이 세계를 석권해서가 아니라 첨단을 걷는 기초과학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에서 얻어진 중국과 이스라엘의 국가 위상은 돈으로는 절대 환산할 수 없는 무한대의 가치를 지닌다. 기초과학의 육성은 단순한 경제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다. 그렇다면 국부 창출 면에서의 기초과학의 위치는 어떠한가?

기초과학은 새로운 현상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려면 모든 조건이 극한으로 가게 마련이다. 온도.압력.전류.시간.공간 등에서 극한조건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히 기술의 발달이 이어지고 새로운 현상을 한번이라도 발견해 본 인재들은 어떤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는 자신감과 노하우를 습득하게 된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물리학자들에 의해 고안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터넷은 '절대로 돈이 될 수 없는' 입자물리학에 종사하는 물리학자들이 고안해 낸 것이고 컴퓨터는 핵폭탄 개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초과학자들이 만들어내는 세계 수준의 논문은 바로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어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우리 기업의 핵심 인력 중 물리학과 화학 전공자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첨단에 갈수록 기초연구 경험자가 필요하며 첨단을 걷는 기업 관계자일수록 "열역학과 화학반응.양자역학.전자기학을 아는 물리학과.화학과 학생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기초과학은 또한 인터넷과 컴퓨터에서 볼 수 있듯이 결과의 불확정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오히려 돈으로 연결되는 기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차세대 화장실로 돈을 벌고 싶으면 오히려 진정한 국가 경쟁력에 직결되는 기초과학에 장기적으로, 거액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차세대 화장실이라는 '응용과학'에만 총력과 예산을 기울이는 순간 차세대 화장실은 오히려 신기루처럼 날아가 버리고 국고는 낭비된다.

기초과학은 이렇게 국가 생존과 위상, 국부 창출에 있어 무한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부에서 '무한히' 지원해줘야 한다. 가시적인 국부 창출은 어차피 기업이 담당할 수밖에 없고, 이익 창출을 위해 기업은 응용과학이나 엔지니어링에 투자한다. 응용과학은 따라서 기업과 정부.투자자로부터 동시에 지원받아야 하며 또한 당연히 그래야 한다.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잘못된 '선택과 집중'에 낭비돼서는 안 된다. 정부에 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절대량에 있어 응용과학에 대한 정부 지원보다 훨씬 더 커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자연과학에 돼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생존이 달린 문제이고 盧대통령이 바로 시작해야 할 과제다.

김대식 서울대 교수.고체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