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봉사 오빠들이 제 아빠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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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의 할머니는 수시로 윤지의 다리를 주물러 준다. 윤지는 두 발의 크기가 서로 다르고, 발바닥이 바깥쪽으로 들려 잘 넘어지고 다쳐 늘 아파해서다. 윤지는 위와 신장이 좋지 않고, 할머니는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윤지(16.여.가명.인천 부평)네 낡은 냉장고는 거의 매일 텅 비어 있다. 할머니(65)는 쌀은 못 사더라도 1000㎖짜리 우유만은 꼭 챙긴다. 간식거리가 아니다. 건더기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윤지의 주식이다. 밥은 한 끼에 3분의 1 공기를 먹기도 힘들다. 정밀 진단을 받지 못해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윤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신장병을 앓기도 했다. 계속 허리가 아팠지만 어디 부딪혀 그러려니 했다. 치료비 걱정에 병원에 갈 생각은 못했다. 하룻밤 열병을 호되게 앓고야 병원을 찾았고, 보름 동안 입원했다.

윤지는 잘 뛰지도 못한다. 똑바로 서도 바깥쪽 발바닥이 들리는 데다 발목이 약해 잘 넘어진다. 할머니는 소풍이나 운동회 때마다 늘 마음을 졸인다.

◆병마 속에서도 웃음=움직이는 종합 병동과 같이 여러 가지 질환에 시달리는 윤지지만 표정은 밝다. 엄마는 기억에도 없고, 아빠는 7년째 연락이 없지만 윤지는 늘 웃는다. 부모 대신 윤지가 의지하는 '제2의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인하대 동아리 '나무'의 언니.오빠들이다. 윤지는 신장병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언니.오빠들을 처음 만났다. 대학생들은 조를 짜 밤낮으로 윤지를 간호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윤지는 먼저 언니.오빠들에게 전화했고, 대학생들은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줬다. 놀이공원도 함께 갔고, 틈나는 대로 집으로 와 말벗이 됐다. 그렇게 지낸 게 벌써 5년째다.

윤지는 "오빠들이 저한테는 아빠예요"라고 말했다. 몸은 아프지만 윤지는 '가족'이 있어 마음은 아프지 않다.

윤지와 할머니에게 힘을 주는 것은 또 있다. 2004년 여름 모기향을 피우고 자다 이불에 불이 붙어 단칸방 살림이 모두 타 버렸다. 앞이 캄캄했지만 동사무소 직원이 백방으로 뛰어 방 두 개짜리 전세방을 구할 수 있었다. 대한주택공사에서 전셋값을 전액 지원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것 같은 때가 종종 있다. 할머니는 윤지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를 받고, 수술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 "수술비가 300만원이라는데…." 폐지 줍고 깡통 모아 버는 돈이 한 달에 10만원, 정부 보조금 30만원. "내 우유 사고 버스비만 내도 하루 5000원인데…." 열여섯 윤지도 살림살이 셈이 훤하다.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비친다. 할머니는 천식에 고혈압으로 거동이 쉽지 않다. 조부모 가정에서 질병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한다.

◆질병의 악순환=선민(11.여.가명.서울 동작구)이 할머니(67)는 최근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협심증.관절염에 우울증까지 앓고 있다. 할아버지(71) 혼자서 선민이 남매의 건강과 영양 상태를 세밀하게 신경 쓰긴 어려웠다. 선민이의 몸무게는 29.7㎏,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 평균(43㎏)에 훨씬 못 미친다. 키 순인 반 번호는 1번이다. 선민이는 또 왼손 손가락이 짧다. 손을 펴도 주먹을 쥔 것처럼 뭉툭하다. 선민이의 왼손은 항상 소매 속에 숨어 있다.

◆직접 방문 진료 필요=저소득층 조부모 가정은 대부분 정부가 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대상자다. 그러나 의료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정밀 검사, 재활 치료, 심리 치료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경기도 조사에선 조부모 가정의 73%가 최근 3년간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적극적인 방문 진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 동작구 보건소의 경우 간호사 14명이 20개 동(洞)의 방문 간호를 담당한다. 독거노인.장애인 등 챙길 집은 많은데 14명 중 10명은 비정규직이라 2월 중순부터 10개월만 일한다. 가장 추운 두 달은 4명이 200~300가구를 모두 맡아야 한다.

이봉주 서울대 교수는 "의료급여는 혜택이 제한돼 있고 질병 예방에 한계가 있다"며 "직접 가정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특별취재팀=정철근, 김영훈 기자, 강기헌.김경진.이종찬 인턴기자 <jcomm@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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