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세례받은 불교계 분노/정교용 문화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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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당국을 향한 불교계의 심사가 뒤틀릴대로 뒤틀려 있다. 단순히 경찰폭력을 규탄하던데서 이제는 그 배후에 선 정권의 퇴진차원으로까지 구호가 에스컬레이트 되고 있다.
정부가 하는 일에는 있는대로 손바닥을 펴고 짝짝이를 쳐주던 불교계가 이제와서 왜 이처럼 앙앙불락으로 등을 돌리려 하는가.
지난 18일 저녁의 제등행렬 때 공덕동 로터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난데없이 행렬선두에 최루탄을 쏟아부은데서 불교인들의 분노가 일었다.
불교인들은 그 이튿날로 교계 각종단과 단체들을 모아 「5·18제등행렬」(위원장 진현근 조계사주지)를 구성하고 내각총사퇴·노대통령의 공개사과·실무책임자인 치안본부장 및 서울시경국장 즉각 파면 등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부처님 오신날(21일)까지 이 요구사항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폭력정권 퇴진운동에 적극 나서겠다」는 단서가 붙었다.
당국은 제등행렬 최루탄 난사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영등포경찰서장 이재열 총경을 경고조처하고 현장지휘를 맡았던 중대장 이장환 경감을 직위해제하는 한편,23일 김원환 서울시경국장 이름으로 사과문도 발표했다.
그러나 공동대책위가 23일 저녁부터 불교회관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고 이어 25일 「불교탄압규탄 및 폭력정권퇴진 범불교도대회」를 연뒤 거리로까지 뛰쳐나오게 된 것은 이들 사이에 당국의 일련의 대응조치가 불교인들의 분노와 상처를 아물릴만큼의 적극성을 띤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인들은 이번 경찰의 제등행렬 최루탄 난사 사태를 80년 10·27사태에 버금하는 제2의 법난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난 규정의 밑바닥에는 당국이 유독 불교만을 얕잡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교인들의 잠재적 피해심리와 고분고분하게 말 잘듣고 협조해준 대가가 고작 이런 식의 대접인가 하는 배은에 대한 반사감정이 짙게 깔려있는 것 같다. 평화적인 제등행렬을 향해 당국이 무분별하게 최루탄을 쏘아대야 했는가도 의문이지만 당국이 불교계를 우습게 알도록 그동안 불교지도자들이 맺고 끊음없이 정권유착으로만 치닫다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있어야겠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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