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전형적인 살쾡이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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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4강전 하이라이트>
○ . 백홍석 5단● . 이창호 9단

젊은 프로기사들에게 물어봤다.

-표범이나 살쾡이 쪽을 가장 많이 닮은 프로기사는 누굴까요.

"이세돌! 그 다음은 조훈현."(거의 만장일치다)

-가장 유연한 행마를 지닌 기사는?

"유창혁!"(공격의 유창혁이 누구보다 유연하다는 데 바둑의 묘미가 있다)

-요즘 떠오르는 백홍석은 아무래도 유창혁에 가깝겠지.

"무슨 소리. 백홍석도 전형적인 살쾡이 과예요."

장면1(32~41)=이창호 9단이 크게 우세한 병력을 앞세워 흑?로 절단해 간 장면. 여기서 백홍석 5단이 이빨을 치켜세우고 32, 34로 역습하는 바람에 검토실은 깜짝 놀란다. 이 9단은 그러나 이미 반격을 예감한 듯 표정이 그대로다.

39와 41이 이창호가 준비해둔 맥점. 자칫하면 귀의 백이 통째로 잡힐 것 같은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TV 해설을 위해 유성에 온 조훈현 9단이 "백진에서 큰 수가 났다. 아무래도 백이 망한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백홍석이 진정 살쾡이 과라면 그냥 당할 리 없다.

장면2(42~55)=백홍석 5단이 42로 한 수 끼워놓고 44로 바깥을 막아가자 조훈현 9단이 "뭐야. 버린다는 건가"하며 눈을 크게 뜬다. 이 부근의 첨예한 접전 탓에 두 사람은 시간을 물 쓰듯 했고 이 45에서 점심시간이 됐다. 신기하게도 점심시간 내내 두 사람의 표정은 지극히 평온해 보였다.

오후 1시에 속개되자마자 백홍석은 46부터 회돌이를 쳐갔다(53-이음). 그 다음 54는 '참고도'처럼 두어 삶을 도모할 수도 있다지만 백홍석은 이 그림에 ×표를 치고 '버린다'는 당초의 노선을 밀고 나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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