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10살 동연이 역할劇 하다 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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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아빠 이은재(41.회사원).엄마 서수진(36.주부).딸 이동연(10.초등 4년).보조 연기자(별자리 사회심리극 연구소 김영한.김장곤, 사회복지사 이정선)

*** 진행

송현철.아름다운 미래 정신과 원장(www.inmirae.co.kr)

*** 무대설명

무대에는 의자가 3개 놓여 있다. 각각 아빠.엄마.딸의 자리다. 자리를 바꾸면 역할도 바뀐다. 진행자의 지시에 따라 등장 인물의 역할은 수시로 바뀐다. [ ]안은 맡은 역할.

1장. 서막

막이 오르고 동연과 엄마가 무대에 오른다.

동연 : 나 여기 오기 싫었어. 나 같은 애는 이럴 시간에 공부해야죠.

엄마 : 내가 공부 시키는 게 불만이니?

동연 : 아니, 이럴 시간에 공부 더 했을텐데….

엄마 : 나중에 열심히 하면 되지. 엄마한테 말하고 싶은 건 없니?

동연 : 없어.

엄마 : 아빠한테는?

동연 : 더 친해졌으면 좋겠어. 장난도 같이 치고.

(아빠가 무대로 등장한다)

아빠 : 어떤 장난?

동연 : 손장난이랑 칼싸움. 여자라서 못한다며.

2장. 아빠, 딸 이해하기

아빠와 동연이 함께 동연 역할을 맡는다. 보조 연기자가 아빠 역할.

보조[아빠역] : 아빠가 많이 바빠서 못하는거야.

동연 : 큰이모부는 아빠보다 더 바쁜데도 잘 놀아주시잖아요.

보조[아빠역] : 아빠도 혼자 쉬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되네.

(동연이 보조자와 함께 아빠 역할을 맡는다.)

아빠[딸역] : 그리고 TV 보는 시간 더 줄 수 없어요?

동연[아빠역] : 동연이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 알지 않니?

아빠[딸역] : 친구들 얘기하는 데 끼지도 못해요.

보조[아빠역] : (동연에게 말한다)자기를 위해 못보게 하는 건데 얘가 잘 이해를 못하네.

동연[아빠역] : 우리도 어릴 땐 그랬잖아.

보조[아빠역] : 네 딸이 어려서 이해를 못하는거니까 잘 설명해줘.

동연[아빠역] : (훈계조로)어릴 때 TV를 많이 보면 중독돼. 또 대학 가서도 책 주제를 몰라서 선생님께 혼난단 말야.

아빠[딸역] : 핸드폰은 왜 안사주세요? 친구들은 많이 갖고 다니는데….

동연[아빠역] : 딴 애들 엄마는 직장 다니니까 급한 일 있을 때 필요하지만 너는 집에 와서 얘기하면 되잖아.

아빠[딸역] : 그럼 나중에 필요하면 사주실 거죠?

동연[아빠역] : 꼬오오옥~사줄게.

3장. 엄마, 딸 화해하기

엄마가 무대에 오른다.

엄마 : 동연이는 매번 알아들었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지나면 또 핸드폰 사달라고 조르더라.

아빠[딸역] : 그러니까 제가 아이죠.

동연[아빠역] : (반가워하며)맞는 말이야. 역시 동연이야.

엄마 : 한번 '네'라고 했으면 참아야지.

동연[아빠역] : (손을 들고 진행자에게 급히 말한다.) 저 동연이 하게 해주세요.

(아빠.동연 원래 역할로 돌아간다.)

동연 : 그러니까 아이라잖아요.

엄마 : 어른은 아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야. 그리고 너 왜 자기 전에 영어 테이프 안듣고 음악 CD 듣니?

아빠 : 하루 종일 공부하고 잠자리에서도 테이프 들으라는 건 너무하잖아. 그리고 동연아, 엄마나 아빠가 요구하는 게 타당하지 않으면 네가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어.

동연 : ….(눈물을 흘린다.)

(엄마가 동연 역할. 동연은 퇴장한다.)

엄마[딸역] : 엄마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화내. 엄마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해야 할 건 해야 한대. 실은…. 나 너무 힘들어.

(객석의 동연,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우리 엄마 알면서도 지금까지 나한테 그런 거예요?")

아빠 : 그랬구나….

엄마[동연역] : 그리고 아빠도 자꾸 짜증내면 무서워.

(엄마 퇴장하고 보조자가 엄마역, 동연은 동연역을 맡는다.)

동연 : 아빠는 오늘 아침에도 엄마가 일어나라고 하니까 "알았다"고 해놓고 20분이나 늦게 일어나서 계속 TV만 봤지? 그런데 왜 나한테는 맨날 꾸물댄다고 뭐라 그래?

보조[엄마역] : 애가 뭘 배우겠어? 당신 TV 볼 시간에 애 업어줘봐.

아빠 : 알았어요. 노력할게.

보조[엄마역] : 지금 약속을 해.

(동연과 아빠,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다.)

동연 : 어기면 벌금 5천원.

4장. 속마음 털어놓기

엄마 아빠가 대화를 나눈다.

엄마 : 내가 악역을 맡고 당신은 좋은 아빠가 됐음 좋겠어. 난 하루 종일 애들이랑 부딪치다 보니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어. 아빠가 업어주고 안아주는 게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데.

(동연, 객석에서 "아!"하면서 털석 주저앉는다.)

아빠 : 알겠어. 나도 하나만. 동연이는 아직 어린데 당신은 너무 짜인 틀에 맞추는 것 같아. 점수가 뭐가 중요해?

엄마 : 우리 나라 아빠들, 애 잡는다고 열내면서도 막상 애가 학교에서 뭐 배우는지는 모르지. 당장 70점 받아오면 당신이라고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아빠 : 0점 맞으면 어때. 지금 0점 맞는다고 0점짜리 인생은 아니잖아.

(객석의 동연, "맞아"라며 박수친다.)

5장. 독백

엄마.아빠.동연 한명씩 무대에 올라 말한다.

엄마 : 엄마는 어릴 때 집에서 살기 싫었어. 영화 속의 여주인공을 보며 외국에서 혼자 사는 생활을 동경했지. 그런데 그런 생각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한 것 같아. 지금도 일하고 싶지만 너희를 떨치고 나가서 살 능력이 안돼. 나중에 네가 원하는 걸 하려면 지금 더 열심히 살아야 해.

아빠 : 동연이가 바라던 거, 아빠가 못했던 거 오늘 많이 이해했어. 앞으로는 많이 노력할게.

동연 : 지금까지 불만 많았는데, 오늘 얘기해 보니까 엄마 아빠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요. 많이 느꼈으니까 이제부터 잘할게요.

아빠 : 진짜?(무대에서 내려온 동연을 꼭 안아준다.)

(막이 내린다.)

6장. 에필로그 - 무대 밖에서

동연 : (엄마에게 달려와서) 엄마, 아빠 좀 어떻게 해봐! 또 담배 피워.

엄마 : 네가 말려봐. 오늘 아빠랑 많이 친해졌잖아.동연 : 정말? (기뻐하며 아빠에게 달려간다.)

동연 : 아빠, 벌금 총 6천원이야. 한 대에 5백원씩 해서.

아빠 : (애교 섞인 목소리로) 좀 깎아줘.

동연 : 벌금 깎아주는 사람도 있어?

김선하.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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