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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끓는 생이별 46년 … '제2의 레나테 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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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약혼자였던 채용준씨가 1961년 북한서 보내온 편지를 펼쳐 보이고 있는 룽게 할머니.

"사랑하는 루트. 어떻게 지내오. 당신이 보낸 편지는 모두 받아 보았소. 편지를 받고 무척 기뻐했다오. 당신에게 입맞춤을 보내고 싶소…"

1961년 12월. 당시 북한 함흥시 성천구역 통남동 1통 34반에서 동독 유학생 출신 청년 채용준(1931년생)은 생이별을 해야 했던 독일인 약혼녀의 아픈 마음을 이렇게 편지로 달래주었다. 그리고 46년이란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다.

독일 북동부의 작은 해안도시 비스마르. 베를린에서 서북쪽으로 3시간여 자동차로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다. 이곳에 '제 2의 레나테 홍' 할머니가 살고 있다. 주인공은 루트 룽게(68). 북한 유학생 지아비를 기다리는 홍 할머니 처럼 기구한 인생을 살아왔다.

50여년 전인 1957년 11월. 수줍음 많이 타던 19살 처녀 루트는 쾌활하고 매력적인 북한 청년 채용준(당시 26세)씨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드레스덴의 한 식당에서 루트를 처음 본 채씨는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룽게 할머니는 "당시 독일 처녀들은 외국인 유학생들은 공부가 끝나면 귀국해야 했기에 대부분 멀리했지만 용준씨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루트는 기계공학을 공부하던 채씨와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동독과 북한 당국은 까다로운 행정절차를 빌미로 이들의 결혼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 약혼을 한 두 사람은 2년 간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61년 3월 채씨는 북한의 소환령을 받고 당시 임신 3개월이던 약혼녀를 남겨둔 채 귀국해야 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눈물로 약혼자와 이별 했던 23세의 꽃다운 처녀 루트는 재회를 의심치 않았다. 아이를 낳으면 곧 바로 북한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다. 북한에 도착한 채씨는 함흥공대로 배치를 받았다. 채씨는 약혼녀와 1년 넘게 편지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당시 북한의 생활여건은 가혹했다.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북한에서 채씨는 약혼녀가 고생할 것이 염려됐다. 그래서 정식 초청을 망설였다. 결국 채씨는 "당신이 동독에서 걱정없이 살수 있다면 진정 기쁘겠소"라며 '북한에 오지말라'는 완곡한 뜻을 전달했다. 그뒤 채씨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룽게 할머니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았다.

충격이 컸지만 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열심히 살아갔다. 어린 아들 토마스(46)는 이제 중년이 됐고 손자도 3명이나 된다.

하지만 최근 룽게 할머니는 과거의 슬픈 기억이 최근 생생하게 되살아 났다. 홍 할머니 사연을 우연히 접하고 나서다. 그는 "신문에서 레나테 사연을 읽은 그 날 정말 힘들었어요. 그이와의 사연이 담겨있는 물건들을 다시 꺼내보면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성탄절 때 아들이랑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한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줬어요. 애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너무 궁금해 했거든요"라고도 했다.

룽게 할머니는 자신도 레나테 홍과 같이 "그 사람을 보고 싶다"고만 했다. 약혼자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쉬움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았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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