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뒤 쓰레기 엉망진창 이게 선진국 가는 길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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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김주택(51)씨가 동대문운동장 앞에서 밤사이 어지럽혀진 거리를 청소하고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집회 끝나고 가 보면 정말 가관이죠. 모든 게 엉망진창이라 한숨만 나와요." 서울 중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김주택(51.고용직 공무원)씨에게 지난 몇 달간은 악몽과도 같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핵(北核) 등 각종 사회 현안과 맞물려 잇따라 벌어진 집회 때문이다. 김씨의 표현을 빌리면 "힘겨운 가을.겨울"이었다고 한다. 서울광장.서울역.명동성당 등 단골 집회장소의 청소를 맡고 있는 중구청 환경미화원 195명은 시위가 열리는 날이면 휴일을 반납하고 전원 근무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22일 FTA 저지 결의대회가 열린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80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서울역을 담당했던 김씨는 평소처럼 오전 5시에 출근해 오후 2시쯤 일을 끝내고 오후 6시 서울광장에 다시 집합했다.

김씨는 "도청에 불이 난 지방과 달리 서울은 비교적 평화롭게 집회가 끝난 편이었지만 그래도 아수라장이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깔고 앉았던 신문지, 배포하다 만 전단지, 구호가 적힌 피켓, 머리띠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일이 끝난 시간은 다음날 오전 2시. 그는 "집회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보통 새벽에야 일이 끝난다"고 웃어넘겼다. 여기다 청계천.서울광장이 명물이 되면서 환경미화원들의 일은 더 늘었다. 김씨도 새해 첫날에도 새벽까지 청계천 주변을 맡아 치웠다. 당시 청계천을 찾은 인파는 평소보다 스무 배나 늘어난 48만여 명. 김씨는 "그날은 꼭 쉬기로 아내와 약속을 했는데 결국 못 지켰다"고 말했다.

?"성숙한 시민의식 아쉬워"=김씨는 1988년 환경미화원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매일 오전 4시30분 첫 버스를 타고 홍제동의 집에서 중구 근무지까지 출근했다. 고용직 공무원 신분으로 월급 150만원 수준의 박봉이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 덕분에 2년 전 맏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평소 김씨의 업무는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쇼핑몰 등 대형 상가 건물의 쓰레기를 처리하고 도로를 정리하는 것. 그는 "도로를 청소할 때 자동차를 피하지 못할까 걱정이 들 정도로 위험한 직업"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1남2녀를 키우면서 자식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일에 충실했다"며 "도시의 더러운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어내면서 직업인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예전에 비해 국민의 살림살이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의식 수준도 그만큼 높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김씨가 일하는 곳에는 아직도 음식물과 일회용 그릇을 분리하지 않고 내놓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거리를 쓸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도 많다.

김씨는 "시위가 끝난 거리에 나가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선진국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념.사상 같은 건 관심없지만 자신들이 떠난 자리만은 꼭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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