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기업만 받는 줄 알았던 경영혁신상 고정관념 깬 동물원이 휩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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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펭귄들이 유리터널로 지어진 수조 안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다. 펭귄들이 하루 두 차례 우리 밖으로 나와 일렬로 산책할 때면 몰려든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대기업도, 벤처업체도 아닌 일본의 작은 시립 동물원이 경영 혁신으로 각종 경제단체가 주는 상을 휩쓸고 있다. 홋카이도(北海道)의 인구 35만 중소 도시인 아사히가와(旭川)가 운영하는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이 주인공이다.

이 동물원은 지난해 일본의 경제전문 출판사인 '닛케이 BP'가 주는 대상을 받았다. 2005년엔 혁신적인 업체와 상품에 수여하는 일본창조대상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이 주는 닛케이 우수제품.서비스상을 받았다. 동물원장인 고스케 마사오(小菅正夫)에겐 여러 기업에서 강연 의뢰가 쇄도하고 있다.

◆악조건 딛고 최고 인기 동물원으로=이 동물원의 입지 조건은 거의 최악이다. 인근에 큰 도시가 없고 판다나 코알라 같은 귀한 동물도 없다. 한 해의 절반은 눈에 덮여 휴관 일수도 많다. 그러다 보니 1996년 연간 관람객이 26만 명에 그쳐 폐장 논의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변신했다. 지난해 입장객 수는 280만 명(추산)에 달해 최고 인기 동물원의 하나가 됐다. 지난달 하순 이 동물원을 찾았을 때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의 평일이었지만 관람객은 만원이었다. 중국과 홍콩에서 온 단체 손님도 보였다.

◆낡은 생각을 깬 '행동 전시'=악조건을 딛고 성공신화를 이룬 배경에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95년 취임한 고스케 원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연구와 토론을 거듭한 끝에 '행동 전시'라는 새로운 전시 방법을 도입했다. 동물의 특성을 가장 잘 볼 수 있고, 동물과 관람객의 교감이 가능한 공간을 배치한 것이다.

정문을 지나 바로 오른편에 터를 잡은 펭귄관에는 펭귄들이 머리 위로 휙휙 날아다녔다. 뒤뚱거리며 걷는 펭귄을 예상했는데 완전히 허를 찔렸다. 관람객 머리 위에 수조를 만들어 헤엄치는 펭귄이 마치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동물원 관계자는 "펭귄이 새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 줄까 고민한 끝에 전시실을 이렇게 바꿨다"고 설명했다.

바다표범관은 박력 만점이다. 전시관 한가운데 서 있는 투명 원형기둥 안에서 바다표범이 박차고 오르는 수직 상승 묘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육사는 "훈련에 의한 게 아니라 호기심 많은 바다표범이 기둥 주위에 몰려든 관람객을 보기 위해 뛰어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극곰도 마찬가지다. 보통 동물원이라면 우리 안에서 잠을 자거나 어슬렁거리는 모습만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선 헤엄치는 북극곰의 털 한 올 한 올까지 투명 유리창으로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헤엄치다 멈춘 북극곰과 유리 너머로 눈인사도 나눌 수 있다.

이 동물원은 99년 맹수관, 2000년 펭귄관에 이어 지난해 '침팬지 산(山)'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시설물을 행동전시관으로 꾸며왔다. 고스케 원장은 "사육사들이 20~30년간 애정을 갖고 동물 친구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가 이런 창조적 아이디어를 빚어냈다"고 말했다.

아사히가와=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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