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총지위만 높여 전교조 고립저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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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작 교사들은 날치기 통과 된「교원지위법」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원의 지위향상은 허구적인 선언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교원의 권익과 국민의 교육권을 지킬 수 있는 노동3권의 보장에서 시작됨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칭만 그럴싸한 교원지위법에는 몇가지 의도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현재 열악한 근무조건이나 보수문제 등에 대해 교사들의 가득한 불만이 교육민주화 요구로 표출될까 두려워 정부가 개량적인 법을 미리 제정하여 그들의 요구를 잠재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뿐 아니라 한국교총의 산하조직인「교육회」에만 교육장, 교육감이나 장관을 상대로 하는「교섭·협의권」이라는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조항에서도 정부의 속셈이 쉽게 발견된다.
정부와 민자당은 그동안 교원의 노동3권은 안된다며 전교조를 부정해오지 않았던가.
이렇게 볼 때 이 법의 교섭·협의권은 엄밀한 의미에서 노동3권의 하나인 단체교섭권이 아니다. 지위법은 교총을 유일한 교원단체로 인정함으로써 교원의 지위 향상보다는「교총지위 향상」을 통해 전교조를 고립·불법화하기 위해 만든 법인 셈이다.
1960년 교원노조가 생겼을 때도 교총의 전신인 교연에서 개량적인 교직단체법을 서둘러 제정했던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위법이 제정된 가장 핵심적인 배경은 정부가 교육마저 손아귀에 움켜쥠으로써 장기집권을 꿈꾸려는데 있는 듯하다. 지난해 7월 군조직법과 방송관계법을 날치기 통과시켜 정부가 군과 언론을 장악하여 장기집권의 바탕을 만든 바 있다.
흔히 교육은 언론과 더불어 이데올로기의 생산·공급의 기능을 지닌다고 한다.
정부가 교육계의 의견통일이라는 논리로 하나의 교원단체 즉, 교총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원리도 모르거나 지배이념을 교육과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주입시키려고 거짓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재작년 7월5일 대통령이 교총을 방문, 교원지위법 제정을 약속한 것이나, 89년 국감시 폭로 된 청와대 극비문서「전교조대책」에서 교총으로의 조직개편과 활성화 지원을 지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3권의 부여를 반대해온 정부가 교섭·협의권이라는 엉터리 권한을 교총에 준 것은 교원의 자주성을 박탈하고 교총을 내세워 전교조의 목소리를 줄이려는 속임수일 뿐이다.【김지철씨<전교조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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