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정국불씨 『공안통치』|그 신조어의 실체는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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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정치권에서는 「공안통치」라는 신조어가 난무하고 있다.
여당보다 주로 야권과 재야운동권들이 현재 노태우 대통령의 통치형태를 공안통치로 규정, 연일 이의 종식을 요구하고있다.
특히 경찰의 강경대군 치사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여당은 우발적인 단순사건으로 치부한데 비해 신민당 등 야권은「공안통치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며 「공안내각」인 노재봉 내각은 총 사퇴하라』고 대여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김대중 신민당총재는 14일 명지대 강경대군 장례식에서도 『노정권이 내각제를 하기 위해 3당 통합을 했으나 여의치 않자 공안내각을 출범시켜 장기집권음모를 꾀하고 있다』고 정부측을 비난했다.
노내각은 공안내각이며 따라서 공안통치를 하고있고 이에 따른 무리한 공권력만능주의가 강군 사건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김총재는 이번 사건이 나기 전부터『공안세력을 종식시키지 않으면 이 나라에 민주화도, 정권교체도 없고 오로지 내각제에 의한 영구집권만 있을 따름이다』며 거듭 종식투쟁을 선언해왔다.
이 부분은 김영삼 민자당대표도 이해가 일치, 공안통치종식을 외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노대통령과 노총리는『공안이란 공공의 안녕과 사회질서 유지』라며『이를 위해 정부는 법에 따라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 공안통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전적 풀이를 내세워 일축하고 있다.
야당은 공안통치가 엄존한다고 주장한데 비해 정부·여당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고 여당에서도 민주계는 입장을 달리한다.
정치권의 입장이 이렇게 판이하게 다르다보니 이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되는 국민들만 가닥을 잡지 못해 어리둥절하다.
공안통치는 실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실체는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도 잡기 어려운 형편이다.
정치권에서 공안통치가 본격적인 정치쟁점이 된 것은 양 김씨의 대구회동이후. 지난달 1일 대구에서 만난 양김씨가 합의문 5개항 중에「공안통치배격」이란 문구를 포함한데서부터 비롯됐다.
당초 공안통치 문제는 상공위 외유사건, 수서사건 등으로 정치권의 부패구조가 폭로되고 양김씨의 정치적 입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김대중총재가 이사건의 배경을 설명하면서부터 사용한 표현이다.
이보다 앞서 김영삼대표의 민주계도 박철언 체육청소년부장관·김영일 사정수석 등 이른바 검사출신의 청와대 친위그룹이 정치에 대한 「공안위원」를 주도해 왔다고 비판할 때 이 말을 사용해 왔다.
신민당이 현정권의 통치 행태를 굳이 공안통치라고 하는 것은 정부안에 있는 「소수의 공안세력」이 정치와 행정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즉 안기부·검찰·청와대 사정담당 등 소위 공안세력들이 정치를 장악, 안가에서 정치와 행정의 방향을 미리 결정, 이를 법조문으로 포장하되 사실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공권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표면적인 법치의 뒤에는 탄압의 강행만 있고 대화와 타협은 없기 때문에 정치는 실종되고 정치출신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개혁에 의한 국민의 지시확보대신 정부의 일방적 탄압만 행해지는 5공 때의 권위주의적 통치형태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시각이다.
그 결과 공권력만능주의가 빚어져 이를 뒷받침하는 검·경의 거친 권력행사로 나타났다. 달아나는 학생을 끌어내러 치사케 한 강군 사건은 그런 형태가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난 것이며 지난 10일의 보안법날치기 통과도 똑같은 정치파행이라는 주장이다.
국회에서 여당이 주도권을 갖고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하는 대신 당정회의에서 미리 결정된 사항을 날치기 형식으로 밀어붙여 정치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개혁입법협상에 참여했던 한 야당의원은 『당초 여당은 타협하려는 의사가 있었으나 공안세력의 압력 때문에 당정합의사항이외에는 한자도 못 고치고 날치기를 감행했다』했다.
즉 공안세력들이 국회와 정당위에 맞아 정치무력화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공안세력들은 재야세력을 국가보안법 등으로 용공으로 묶어 탄압하고 정치인들은 파렴치범으로 몰아 정치불신을 심화시킨다는 야당측의 주장이다.
지난 1월의 국회 상공위 사건도 바로 공안세력에 의한 정치권무력화 작업의 일환이라는 게 야당시각이다.
김총재는 6공정부가 국회의원 13명을 구속시킨 것은 이 같은 정치무력화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이 법적·도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면 몰라도 우리정치현실에서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공안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공안세력들은 주기적으로 「사정」을 앞세워 국회의원 등을 위축시키고 결국 의회기능의 약화를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이들 공안세력들의 목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을 무력화시켜 결국 정국을 완전주도, 내각제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도록 옥죄어 끝내는 내각책임제를 획책하려 한다는 것이 야당의 피해의식이자 현실인식이다. 공안세력들이 공안통치를 통해 노대통령의 집권말기 권력누수방지와 노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판설치를 하고 차기정권을 재창출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의 총체적 무력화로 인해 최대의 피해자는 양김씨.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두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결국 세대 교체론을 불러올 수밖에 없어 양김씨의 퇴진이 불가피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양김씨가 대구회동에서 쉽게 이해가 일치된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민자당내에서는 민주계가 김총재와 시각이 일치한 반면 민정·공화계는 완연히 다르다.
민정계나 청와대측은 「공안통치」주장에 『양김씨가 자기네 대권고지에 가는데 기반이 흔들리니까 마치 공안세력이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양 호도하고 있다』며 『수서 사건의 경우 정치권이 정화되지 않은 탓에 정상적인 검찰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결국 야당이 주장하는「공안통치」는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권행사라는 주장으로「공공의 안녕·질서유지」이외에 다른 정치적 복선을 깐「공안통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이들은 양김씨의 대권욕망 때문에 모든 정치가 왜곡되고 그로 인해 정치불신이 가중됐다고 본다. 때문에 정치가 불신 받고 제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는 행정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한다는 주장이나 정치지도자들의 불신으로 정치의 기능상실이 초래됐다는 주장은 모두 양시량비론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합법적 폭력」이랄 수 있는 정부의 권력이 정상적으로 행사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권력의 과잉행사는 바로「권력의 폭력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정부측은 간과하고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치는 생물이므로 자정기능에 의해 조정되어야지 공안세력에 의한 타율조정은 불식되어야 한다는 야당측의 주장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기도하다. <정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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