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CoverStory] 자~ 떠나자 '그림' 잡으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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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수묵화 안면도 귓소골 저수지

안면도 여행을 하는데 눈이 온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다. 눈 오는 날은 흐린 데다 쌓인 눈과 내리는 눈의 색감이 같아 사진으로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다. 조급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다 발견한 곳이 귓소골 저수지다. 저수지 건너편엔 눈옷을 입은 나목이 줄지어 섰고, 어두운 물빛엔 나목의 반영이 고스란히 비친다. 게다가 어두운 물빛에 대비된 눈은 사진으로 표현하기 적당하다. 밝은 낯보다 어두운 밤에 하얀 눈이 더 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얼마 뒤 그 저수지에 다시 갔다가 한 번 더 놀랐다. 너무 볼품이 없어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만 게다. 역시 사진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작품이 되기도 하고 그저 스치는 풍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게 '삽시간의 황홀'이 아닐까.

■가는 길 = 77번 국도를 타고 안면도 끝자락으로 내려가다가 장곡리 버스정류소를 지나면 오른쪽에 작은 저수지가 나타난다.

■TIP = 차를 길 옆에 세우고 차 지붕 위에 올라가 찍은 사진이다. 길섶의 개나리 덤불이 시야를 가려 저수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은 탓이다. 그 차이라곤 고작 키 높이지만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SUV차량이 아니라면 사다리를 항상 준비하는 게 좋다.

"사진은 삽시간의 황홀이다."

사진을 생의 화두로 삼고 살다간 작가 김영갑(1957~2005)의 말이다. 하지만 그가 담아낸 '삽시간의 황홀'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다. 그의 사진에선 구름이 흐르고 햇살이 비춰들며 바람이 불고 있다. 황홀했던 찰나의 순간은 사진 속에서 영원히 살아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영갑의 사진만 그런 게 아니다. 어떤 사진이든 마찬가지다. 가끔 들춰보는 앨범 속의 빛바랜 사진이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던가. 한때 카메라가 집안의 가보로 모셔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인 요즘은 카메라 없는 이를 찾기 힘들 정도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고, 심지어 예닐곱 남짓한 꼬마 손에도 카메라가 들려 있다. 바야흐로 여행과 사진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됐음이다.

우리 땅 곳곳을 카메라에 담고 신문에 소개한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 많은 시간 전국을 누볐으니 더 이상 가 볼 곳이 있느냐"고 묻는 이가 더러 있다. 답은 항상 "아직 못 본 것이 더 많다"이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한 그루 나무조차 싹트고 우거지며, 단풍 들다 낙엽지지 않는가. 결단코 자연은 단 한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땅의 속살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품고 있다.

함박눈에 그 자체로 수묵화가 되는 저수지, 햇살에 온몸으로 물드는 겨울 나목, 물안개 피어오르는 새벽 호수, 첫발자국조차 그림이 되는 순백의 설원, 겨우내 까치밥을 남겨둔 이의 살가운 마음….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을까. 이 모두는 그 앞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이의 몫이다. 이번 주말 '삽시간의 황홀'을 찾아 사진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불타는 능선 미시령 울산바위

동틀 녘 미시령 고갯길에서 울산바위를 마주하면 어둠 속에서 산이 깨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해의 첫 햇살이 비춰들면 늠름한 기상의 울산바위와 치마폭처럼 펼쳐진 산 능선이 꿈틀대며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능선 마루에 선 나목들은 온몸으로 빛을 받아 꽃불인 듯 붉게 타오른다. 광각렌즈로 울산바위와 능선 모습을 담는 것도 좋지만 망원렌즈로 산 능선과 나무들을 클로즈업하면 빛의 대비가 적절히 어우러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촬영 포인트 = 미시령 옛길을 타고 속초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시야가 트이는 곳은 어디나 포인트가 된다. 새로 개통한 미시령 동서 관통도로의 전망대 근처에서는 좀 더 근접촬영을 할 수 있다.

■TIP = 사진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며, 그 빛에는 성질이 있다. 강한 빛, 부드러운 빛, 흐린 빛, 붉은빛, 푸른빛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빛의 성질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이용하면 같은 장소에서도 수만 가지의 사진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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