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안보이는 「시신시위」/강군장례 무기연기… 배경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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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청앞서 추모기회 줘야”/대책회의/“교통혼잡 시민불편 크다”/경찰/“연기된건 우리 책임 아니다” 양측 서로 떠넘겨
강경대군사태로 촉발된 시국위기가 14일 발인·영결식까지 마친 강군의 장례일정이 서울시청앞 노제를 둘러싼 정부와의 충돌로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5·18」을 앞두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노협등 노동단체와 전대협·재야단체 등은 이번 노제충돌을 강군에 대한 두번째 폭력으로 규정,이를 「5·18총파업」 투쟁 등으로 확산시켜 대정부 총공세를 펼 것으로 보여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14일이 노제충돌에 따른 장례일정 무기한 연기에 대해 범국민대책회의조차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대책회의는 그동안 뚜렷한 명분도 없이 장례식을 무작정 미루고 있다는 일부 비난과 대학생들의 잇단 분신사태로 강군사건으로 얻어낸 국민적 분노마저 퇴색해 가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5·4,5·9대회 등을 통해 상당한 투쟁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한 대책회의는 장례식을 일정대로 치른뒤 5·18을 위한 전열재정비에 들어가기로 했었다.
이에 따라 시청앞 노제강행이라는 대외적 방침에도 불구,내부적으로는 14일중 장례식을 마무리짓는다는 일정을 굳혔었다.
그러나 14일 오전까지만해도 순조롭던 장례식이 전혀 예상치 못한 「홍남교사건」이라는 결정적 변수에 막혀버렸다.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 사저 사이로 난 연희동길로 진행하던 운구행렬이 홍남교에서 경찰에 의해 차단되고 최루탄세례까지 받게된 것이다.
시청앞 노제만을 문제삼던 정부가 이렇다할 위험요소도 없는 예정된 운구행렬을 막아버려 5시간씩이나 행사를 지연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무기연기라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었다.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모든 행사가 끝난데다 노제강행방침에 따른 경찰과의 공방전·광주행 차량동원 등 소요시간을 고려한 대책회의는 다음날 새벽 아무도 없는 시간에 하관식을 하느니 차라리 연기하는 편이 났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연기를 강행케한 또 하나 요인은 유가족들의 감정적 문제.
홍남교에서 운구행렬이 차단되자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와 어머니 이덕순씨는 길을 터달라고 몇차례 호소했지만 최루탄세례만을 받아 감정이 격화됐다.
이씨는 최루탄으로 잠시 실신하기도 했고 경찰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까지 퍼부울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다.
대책회의측은 장례식을 무기 연기한 배경에 대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많은 시민이 모이는 시청앞 광장에서 강군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는 것이 유가족의 확고한 뜻이며 국민의 바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정부가 평화로운 장례식마저 폭력으로 가로막는 현실에서 장례식을 무기연기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대책회의는 『공권력에 의해 숨진 강군의 원혼을 서울의 중심부에서 풀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장례일정중 하나이므로 반드시 치르겠다』는 것이다.
대책회의는 또 시신을 볼모로한 투쟁은 너무 심하다는 여론을 의식,『시신을 옮긴 것은 최루탄을 쏘며 방해하는 공권력으로부터 긴급 피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중동원이 대책회의측에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대책회의는 이날 신촌로터리에 모인 군중을 15만명으로 추산하고 이중 자체 동원한 5만명을 제외하고도 약 10만명이 행렬에 가세하는 등 적극적인 호응을 얻은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시청주변이 집회금지장소인데다 ▲극심한 교통혼잡과 시민 불편이 우려되고 ▲시청앞에서 강군 노제를 지낼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찰은 특히 87년 이한열군 장례식때의 예에서 보듯 시위대의 시청 점거와 광화문 진출기도 등 돌발적인 사태를 우려했다.
경찰관계자는 『평화행진을 약속하고도 돌과 화염병을 마구 던지는 폭력시위대를 순수한 장례행렬로 봐줄 수는 없다』면서 『대책회의는 아예 장례를 무기연기하기로 각본을 짜놓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충돌을 일으킨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측은 『장례일정이 예정보다 훨씬 늦어지기는 했으나 신촌로터리 추모제가 끝난뒤 망월동묘지로 운구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장례 무기연기사태에 대한 경찰과 대책회의측의 이같은 「책임 떠넘기기」에 대해 많은 시민들은 『강군 사망이후 18일만에 장례가 치러진 것도 문제인데 이를 또 무기연기한다는 것은 대책회의가 내세우는 이유가 아무리 타당해도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견해를 나타내며 『무기연기의 빌미를 제공한 경찰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대책회의측이 이번 노제투쟁을 「싸움의 시작」이라고 밝히고 있듯 강군 장례문제로 얽힌 사태의 파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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