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 풍성한 한마당 웃음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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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잿빛구름으로 온통 뒤덮인 하늘이 감자기 한구석이 갈라지며 밝고 환한 햇빛이 쏟아지듯 『따라지의 향연』은 오늘 어둡고 침통한 우리에게 시름을 잊고 즐거운 웃음을 마음껏 웃게 해준 한마당의 잔치였다. 이러한 웃음은 세상과 무관한 괜한 웃음이 아니라 억눌려 갇혀 있던 우리의 삶을 풀어주고 위안하는 재생의 약효를 갖는다.
자유극장이 25년 전 창단 하면서 공연하고 올해 「연극의 해」를 맞아 「사망의 연극 잔치」로 펼쳐진 이 이탈리아희극(스칼페타 원작, 김정옥역·연출)은 오늘날 웃음조차 뒤틀리고 윤기가 메말라버린, 거칠고 삭막한 연극계에 고전희극의 참 맛과 건강성을 새삼 일깨워주는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배우들과 인기 있는 텔레비전탤런트들이 대거출연, 그들의 기량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이번 공연은 우리의 연극에서 희극을 소화해낼 수 있는 수준의 한 정점을 보여준 것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한결 세련되고 기교에 능했으며 연출과 스태프는, 특히 이범복의 의상은 무대를 풍성한 볼거리와 웃음거리들로 채워놓았다.
고전희극은 젊은이들의 사랑, 이들을 방해하는 어리석은 늙은이들과의 갈등, 그리고 마지막의 화해와 행복한 결말을 정서적인 구조로 하며 이 작품 역시 그렇다. 다만 주인공들이 가난뱅이 따라지들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여러 가지 웃음거리들과 귀족들에 대한 풍자가 곁들여 있다. 스칼페타의 플롯은 아주 복잡하며 동시에 그것을 매끄럽게 풀어 가는 솜씨가 이 작품의 희극적인 원천이 된다. 신분이 다른 젊은이들의 사랑이 두쌍으로 전개되고 그 두쌍의 집안이 하나로 겹쳐지는 바람에, 더욱이 한쪽 귀족집안의 친척들은 사실 따라지들에 의해 위장 연출되어 있는 바람에 여러 가지 뜻밖의 감추어진 비밀들이 드러나고 포복절도할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아무리 플롯이 정교하고 치밀해도 희극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의존한다. 김금지 박정자 박융 권범길, 이 네 사람의 따라지들과 벼락부자 기사인 박인환은 이 극의 중추로 거의 손색이 없다. 그들은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정말로 이 극의 정취를 맛보고 싶은 관객에게는 그들의 몸과 놀림이 좀더 가볍고 절묘했으면 하는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 예로 박융의 얼음 녹듯 무너져 내리는 연기장면 말이다. 윤소정 오지혜 모녀가 동시에 출연한 것은 우리 연극계의 화제가 될만하며 더구나 신인 오지혜의 청순하고 깨끗한 연기가 더욱 그렇다. 귀족 박일규는 무용 아닌 연극연기가 더 다져져야 될 것 같다. 박순애와 홍학표는 아직 무대에 설지만 박순애는 전작 『도적들의 무도회』에 비해 훨씬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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