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씨 "과격 투쟁, 여론만 악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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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투쟁은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 여론만 나쁘게 한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74)씨가 12일 "노동계와 정부가 강경한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노동자들의 잇따른 분신이 걱정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악법 철폐"를 외치며 서울 청계천 평화상가에서 몸을 불사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33주기를 하루 앞두고서다.

李씨는 어떤 경우든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죽은 뒤 남은 사람들이 열사 가족이 되면 뭐하나. 가슴에 맺힌 피멍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폭력 시위를 주장했다.

李씨는 폭력시위로 얼룩진 민주노총의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지난 8일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찾아가 "얻어터지고 구치소에 가는 시절은 끝났다. 차라리 시청 앞에서 연좌하는 비폭력 시위를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결과가 그 모양이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분신한 노동자의 가족을 보면 옛날 내 모습 같다"는 李씨는 "아들이 죽은 70년대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의 삶이 힘겨운 것이 너무 속상하다. 기업체와 정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노조원 등 최근 분신 자살한 노동자 가족들을 모두 찾아가 만났다는 李씨는 "30년이 지난 나도 아들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는데 그들의 심정은 어떻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李씨는 이날 민주화운동보상위원회를 항의 방문했다. 그는 "보상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아들의 보상금으로 8백30만원을 책정하는 등 비현실적으로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과 서울 명동성당에서 전태일 열사 33주기 추도식이 열린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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