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용변기 없어 시험 못본 장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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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매년 대학 입시철만 되면 신문에는 갖가지 미담이 가득 실린다. 장애를 이기고 대입에 성공했다느니 하는 기사는 이제는 흔한 편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점수를 받고도 대입 낙방에 항의하는 기사가 흔했다. 당시 장애인들의 항의에 대한 대학당국의 해명은 '실험실이 2층에 있다는 이유'였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시험제도가 입학 후 신체검사 방식으로 바뀌면서 신체장애가 대학에 떨어지는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90년대까지도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아예 원서 접수조차 거절하는 사례는 계속되었다. 99년에 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에 의해 학교장이 입.전학시 장애를 이유로 거절했을 경우 처해질 무거운 벌칙조항으로 이러한 사례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5일 뇌성마비 장애인 허광훈씨는 편의시설 미비로 2년 동안 힘겹게 준비해온 수능시험을 중도에 포기했다. 보도에 따르면 책상이 불편하고 화장실이 교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 이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응급실에 실려가면서까지 병원에서 시험을 치르는 경우는 더 이상 새로운 풍속도가 아니다. 그러나 2년 동안 야학에 다니면서 대학입학 열망으로 가득찬 서른여섯살의 수능생이 책상과 편의시설 때문에 시험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반적으로는 시험장에 입장하는 수험생의 가방에는 필기류와 요점정리 문건.보온통 등이 들어있다. 책상과 용변기까지 지참하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고 있다. 허광훈씨의 항의에 대한 교육당국의 해명인즉 이렇다. "그동안 장애인들이 직접 용변기를 가져오거나 책상 등도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 본인이 가지고 와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장애를 가진 수험생은 수십년 간 존재해 왔다. 따라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결국 이번 사태는 교육당국의 안이함에서 빚어진 한 편의 코미디라고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차별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지역.학력.여성.연령 차별, 노동현장에서의 갖가지 차별, 장애에 대한 차별 등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소위 'AA'가 말해진다.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의 약자인 AA의 대표적 방식으로는 마이너리티 그룹에 대한 노동시장에서의 할당제가 있다. 최근 서울대가 발표한 지방학생 일정비율 할당방식 등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안전하게 시험볼 수 있는 환경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 과연 좌변기를 설치한 화장실이 가까이 있는 교실에서 시험을 치르겠다는 것이 무리한 요구인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을 위한 책상이 비치된 수학능력 시험장의 모습은 부자연스러운 것인가.

최광훈씨가 시험을 중도에 포기한 사례를 차별이라고 인정(?)받기 위해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지 않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이러저러한 방안을 연구해 우리 불쌍한 장애인을 잘 봐달라고 교육당국에 애걸할 생각이 전혀 없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시험장에 책상과 용변기를 지니고 입장하는 웃기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이 사회에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김정열 장애우권익문제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