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벌레-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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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동호(1948~) '벌레-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전문

빈 숲의 딱따구리 소리여
움직일 곳 바이없구나

오막살이 집
구부린

벌레 한 마리.



충치앓이에는 딱따구리의 주둥이를 구하여 앓는 이 사이에 끼워두었다. 딱따구리가 벌레를 잡아먹듯이 충치의 벌레가 죽어 치통이 낫는다는 논리 아닌 논리의 시대가 있었다. 고목에서 자생하는 벌레를 잡아 먹고 사는 딱따구리 소리가 나면, 모든 벌레는 겁먹은 나머지 몸이 굳어져 움짝달싹할 수 없고 말고. 벌레의 오막살이 그 따스한 가정집 안방 아랫목의 벌레는 얼마나 기절초풍했을까? 딱따구리 소리는 안 듣겨도, 늦가을 된서리 치고 얼음 어는 추운 날, 아기벌레는 조그마한 몸을 옹크리고, 엄마 벌레도 긴 몸을 구부리고, 겨울 삼동을 견디어내야 할 테니까. 이런 걱정으로 이 시인은 겨울 한밤중에 홀로 잠깨어 눈떠 새우리라.

유안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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