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고교 졸업 후 유학 중 62년 정치망명|89년 화학기술회사 설립…"한국 국적 원해"|불가리아서 상사운영 이상종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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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일성은 민족의 역사를 없애고 자신의 가정역사를 민족역사로 날조·대체했습니다.』
지난56년 불가리아 유학 후 김일성 체제를 비판하다 정치망명, 지금은 친한 인사가 된 이상종씨(56)가 9일「그토록 오고 싶었던 조국」서울에 왔다.
이씨는 작년4월 한·불가리아 수교이래 우리측 동구사절단에 현지 상공관계자들을 소개해주는 등 한국의 대 동구진출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씨의 서울 방문은 그의 이같은 노력에 보답하는 뜻으로 황승민 중소기협 중앙회장이 초청, 이루어지게 됐다.
19일까지 머무르게 될 이씨는 이번 방문기간 중 ▲불가리아와의 경협 문제에 관한 세미나개최 ▲KOTRA 등 중소기업 지원단체 방문 ▲삼성전자·삼성물산 등 산업체방문 ▲외무부 관계자 및 중소기업학회 교수와의 모임 등 바쁜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처음으로 한국에 온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감격에 겨운 듯『마치 어머니 품에 안기는 느낌』이라며 울먹였다.
『불가리아는 현재 다른 동구국가와 마찬가지로 정치·경제적으로 자유민주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국가경제체제가 무너지고 사유재산제 인정 등 자유시장경제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씨는『지금 불가리아 국회에서 외국자본 투자보호법이 토의되고 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완전한 개방체제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함경남도 영흥군 진평면 태생인 이씨는 56년 북한에서 고등중학교(우리의 중·고교)를 졸업하고 사회주의 동맹국가인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소피아 화학 공업대에 입학한 이씨는 대학재학 중 북한 소피아 유학생청년 회장을 맡았다.
매주 토요일 북한대사관에서 유학생을 모아놓고 실시하는 대남 비방·김일성 찬양 일색의 교육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이씨는『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보면서 김일성 체제가 얼마나 허구였나를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때부터 이씨는 김일성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대사관에 붙이는 등 반 김일성 운동을 벌였 다. 그러자 동료유학생들이 이씨를 밀고, 평양에서 호출하자 그와 함께 행동했던 세 친구와 같이 62년 불가리아에 정치망명을 했다.
그해7월 평양에서 파견된 공작원들에 의해 체포된 이씨는 북한대사관에서 2개월 동안 감금생활을 하다 대사관 4층 화장실 창문을 따고 탈출에 성공했다.
63년 대학을 졸업하고 화학목재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다 7O년 대학 부교수급인 학사 직위를 받고 대학연구소 부교수로 일해갔다.
89년1월 불가리아에서 개인회사설립 허가법이 제정되자 그해 3월 화학기술회사를 설립했고 작년 한·불가리아 수교 후 무역상사도 운영하고있다.
67년 결혼한 불가리아인 부인(46)과의 사이에 1여(23). 북한에는 현재 이씨의 남동생(물리연구사)·누이동생(화학기사)이 살고 있다. 28년간의 망명생활에 이씨는 무국적자가 돼 버렸다. 불가리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지만 거부했다. 그는『가능하다면 한국 국적을 얻고싶다』고 했다.<정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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