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정치권 … '개헌 전선'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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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전격적인 개헌 제안에 정치권이 요동쳤다. 그러면서 여야 대선 주자들의 입장도 드러났다. 향후 치열하게 전개될 '개헌 전선(戰線)'을 예고하는 듯했다. 우선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모두 노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했다. 최근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고건 전 국무총리는 찬성했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김근태 전.현 의장은 지지 또는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부정적이다. 민노당은 "원포인트 개헌은 안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내에선 노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나라, '말려들지 말자'=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전해지자 박 전 대표, 이 전 시장, 손 전 지사는 차례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참 나쁜 대통령" 등 박 전 대표의 표현이 가장 강했다. 손 전 지사는 "지금은 개헌을 추진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긴급 소집된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포함, 모든 개헌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나경원 대변인)는 입장을 정했다. 신속한 결정이다. 노 대통령의 '전략'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는 경계심이 묻어났다. 강재섭 대표는 "대통령은 민생 경제에 몰두하고 정략적인 일은 벌이지 않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대통령은 국민이 개헌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를 이용해 반대하는 세력을 코너에 몰아 자신의 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전 대표 쪽의 유승민 의원도 "개헌 논의를 촉발시켜 그 속에 자신이 원하는 이슈를 끼워넣으려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선 출마를 밝힌 원희룡 의원만이 "대통령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개헌안이 발의되면 논의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건, '찬성 속 떨떠름'=고 전 총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서로 엇갈리고 지방선거까지 (합해) 거의 매년 선거를 치르는 것은 국력의 낭비"라며 개헌 찬성 입장을 밝혔다. 고 전 총리 측은 "임기 조정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 고 전 총리의 일관된 입장이고, 지금도 그 기조에 변화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의도 없이 소신을 밝힌 것으로 이해해 달라는 취지였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하는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개헌 정국'이 고 전 총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범여권 정계 개편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열린우리,'겉으론 환영, 속으론 복잡'=김 의장은 적극적으로 노 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했다. 그는 "유리한 (대선) 상황이 흔들릴까봐 개헌을 망설이는 것은 당리당략"이라며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정 전 의장은 "개헌이 실현되면 중장기적으로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개헌은 당리당략 차원을 넘어 국가 미래란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의장과 비교하면 원론적 지지 정도다. 당내엔 두 가지 기류가 엇갈리고 있다. 개헌 정국이 불리한 대선 판도를 통째로 흔들 수 있다는 기대감과 통합신당 작업에 제동이 걸릴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뒤섞였다.

문병호 의원은 "여권에서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노 대통령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등 당 사수파와 친노 직계 의원들이 일제히 환영했다. 노 대통령 측근인 염동연 의원은 "대통령이 (개헌) 제안을 할 때는 탈당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그런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며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을 거론했다.

◆민주당 "정략적 의도 경계해야"=민주당 장상 대표는 "개헌 제안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은 "중차대한 문제를 사전 협의 없이 불쑥 국민 앞에 내놓는 제안 방식은 문제"라며 "특히 원포인트 개헌만 하자는 것에 당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김정욱.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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