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시인 이상화 옛집 복원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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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가 1월 중 복원작업에 나서기로 한 대구시 중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 주위가 재개발돼 이상화 고택만 고층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대구=조문규 기자]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대구 출신의 저항 시인 이상화(1901~43년)가 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구절이다. 1926년 '개벽'에 발표된 이 시는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은 울분을 표현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항일 정신과 문학 세계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상화의 옛집이 복원된다.

이진훈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8일 "그가 말년에 머물렀던 중구 계산동의 고택을 원형대로 복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2억5000만원을 들여 계산성당 남동쪽에 있는 한옥 두 채(대지 373㎡, 건축 면적 168㎡)를 이상화가 살던 40년대 모습으로 복원한 뒤 유족과 지역 문인 등이 소장한 유품을 모아 10월에 문을 열기로 했다. 이상화는 그의 백부가 지은 이 집에서 2년여 생활하다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대구 서문로에서 태어나 네 차례 이사했으며, 생가와 그가 살았던 다른 집은 개발 과정에서 모두 헐렸다.

시는 지역 문인과 유족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달 중 설계작업을 마친 뒤 개.보수에 나설 계획이다. 50년대 피란민에게 세를 놓기 위해 뒤뜰에 만든 방 한 칸과 마당 옆에 설치된 화장실은 철거하고, 썩은 서까래와 부서진 마루는 전면 보수한다. 서재와 생활공간으로 사용했던 사랑채의 방 세 칸도 당시와 같은 한 칸짜리로 복원된다. 시는 마당에 있는 석류나무 두 그루와 감나무 한 그루, 붉은 벽돌로 만든 장독대는 그대로 보존할 계획이다.

이 집은 대구시의 도시계획 도로에 편입돼 헐릴 뻔했지만 98년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반발하면서 보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2004년 6월 인근에 주상복합건물을 짓던 군인공제회가 이 집을 사들여 대구시에 기부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이상화=호는 상화(尙火) 본명은 이상화(李相和)다. 7세 때 아버지를 잃고 백부의 보살핌을 받았다. 백부에게서 한학을 배운 뒤 15세에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해 3년을 수료했다. 민족 정신을 고취하는 시를 발표하던 그는 의열단 사건 연루 혐의 등으로 일경에게 고초를 겪었다. 22년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으로 등단한 뒤 '단조' '나의 침실로'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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